혀가 얼얼할 정도로 단 도너츠를 몇 개 집어 먹은 뒤 플레인 베이글을 베어 물었을 때가 이럴까. 이런저런 영화를 거의 매일 보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는 남달랐다. 달고 신 맛이 전혀 없으므로, 입에서 먼저 침이 나와 고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과묵하고 건조한 영화의 흐름에 호흡을 맞추는 데 약간 시간이 필요했다. 노인을>
‘코엔 형제’라는 감독의 이름만으로, 영화는 긴 설명을 생략하게 한다. <허드서커 대리인> <바톤 핑크> <파고> 등에서 보여줬던, 무미건조함 속에 번득이는 긴장감이 생생히 살아 있다. 뺏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숨막히는 대결이 펼쳐지지만, 그것을 담아내는 화면은 지극히 고요하다. 하지만 그 고요함은 관객들이 미칠 듯한 긴장감을 스스로 생산해 화면 속에 투사하게 만든다. 파고> 바톤> 허드서커>
인적 없는 텍사스 사막. 사냥을 하던 모스(조쉬 브롤린)의 조준경에 한 무리의 시체가 들어온다. 총탄에 벌집이 된 픽업 트럭과 시체들은 이들이 마약거래를 하다가 수가 틀어졌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케 한다. 죽어가는 남자가 물을 달라고 애원하지만, 모스는 240만 달러가 든 돈가방을 들고 현장을 떠난다.
모스는 다음날 아침 다시 그곳에 갔다가, 시체들을 찾아 온 남자들로부터 총격을 받는다. 현장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 모스는 아내를 피신시키고 자신도 긴 도망을 시작한다. 살인청부업자 쉬거(하비에르 바르뎀)가 그의 뒤를 쫓고, 늙은 보안관 에드(토미 리 존스)도 그들의 뒤를 밟는다. 영화는 모스와 쉬거의 발길을 따라 어둡고 메마른, 종국에는 허무한 122분의 잔혹극을 이어간다.
이 영화는 극의 긴장감을 만들면서 비주얼과 음향 등 기술적 부분에 기대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수식 없이도, 스릴러가 존재할 수 있음을 웅변하는 듯하다. 압축가스를 이용해 사람을 죽이는 쉬거의 모습은 그런 자신감을 보여주는 일종의 영화적 경지다. 종교 영화의 성직자 같은 표정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표정은, 스릴러 영화의 뼈다귀가 무엇인지 똑똑히 느끼게 한다.
동전 던지기로 사람을 죽일지 살릴지 결정하면서도 정연한 논리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이 사이코패스는, 인간 내면이 얼마나 복층적인 잔인함과 기괴함의 덩어리인지 깨닫게 한다. 그 차가운 성찰이 영화음악 하나 쓰지 않은 이 영화에 피아노선이 끊어질 때와 같은 섬뜩한 울림을 일으킨다. 두려움의 본질을 꿰뚫은 시나리오의 힘과 지독한 압축미가 그 울림에 관객들이 공명케 만든다.
미국 감독조합상과 영국 아카데미(BARTA) 감독상 등 각종 상을 휩쓸고, 24일 열릴 아카데미상에도 8개 부문의 후보로 올랐다. 21일 개봉. 18세 관람가.
유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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