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웅진닷컴
숭례문 방화 사건을 보고 많은 이들이 미시마 유키오(1925~1970)의 소설 <금각사(金閣寺)> 가 떠오른다고 한다. 일본 언론도 숭례문 방화를 금각사 방화와 비교하고 있다. 그럴만도 하다. <금각사> 는 미시마가 1950년 7월 2일 하야시 쇼켄이 저지른 교토의 고찰 금각사 방화사건을 취재, 1956년 발표한 소설이다. 일본 전후세대의 니힐한 의식, 혹은 이상심리를 탐미적 문체로 표출했던 미시마의 대표작이다. 금각사> 금각사(金閣寺)>
하지만 소설과 현실, 숭례문과 금각사의 방화는 유사한 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크다. 당시 21세의 말더듬이 사미승이었던 하야시는 공판 과정에서 “자기 혐오, 미에 대한 질투, 아름다운 금각과 함께 죽고 싶었던 점, 사회에 대한 반감” 등등을 방화 동기로 들었다. 숭례문 방화 용의자는 토지보상금이 적은 데 불만을 품었다 한다. ‘사회에 대한 반감’인 셈이다. 하지만 미시마가 소설을 위해 채택한 것은 ‘미에 대한 질투’였다.
<금각사> 는 주인공 미조구치가 방화에 이르는 경위와 필연성을 치밀한 구성과 심리 묘사, 유미적 문장으로 그려낸다. 미조구치는 하야시처럼 말더듬이다. 말더듬이로 상징되는 젊음의 고뇌와 방황을, 절대적 미의 상징인 금각과 열등한 존재인 나 사이에 놓인 좁힐 수 없는 간극을, 금각 그 자체를 불태워버림으로써 지워버리고 ‘행위’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젊음의 이야기로 바꿔놓은 것이다. 금각사>
소설에서 미조구치가 친구 가시와기와 나누는 저 유명한 대화. “이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인식이라고. 알겠냐, 다른 것들은 무엇 하나 세계를 바꾸지 못해.”(가시와기).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절대로 인식이 아니야…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행위야. 그것밖에 없어.”(미조구치).
빼어난 문학이지만, 군국주의의 부활을 외치며 할복자살한 미시마의 ‘행위’를 떠올리면 끔찍한 소설이기도 하다. 언제 ‘오늘의 책’으로 쓸까 꼽아두던 작품이었는데 아침저녁으로 보던 숭례문이 잿더미로 변해있는 허망을 대하고 쓰다니, 안타깝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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