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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불타버린 숭례문, 무너진 문화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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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불타버린 숭례문, 무너진 문화한국

입력
2008.02.1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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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꿈이라면…. 그러나 이것은 참담하게도 현실이다. 화마(火魔)는 잔인하게도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보1호 숭례문(崇禮門)을 집어삼켰다. 이 나라 600년 역사를 지켰던 숭례문이 5시간 만에 시커먼 재로 변하는 순간 대한민국의 자존심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나"라는 말밖에 안 나온다. 숱한 역사의 질곡 속에서도 꿋꿋하게 견딘 서울 최고(最古)의 목조물을 이렇게 어이없이 불살라 버리고도 '문화 민족' '문화 강국' '문화 서울'을 말할 수 있나. 화마를 누르려, 먼 후대에까지 화마를 조심하라는 깊은 뜻으로 현판을 세로로 쓴 선조들의 탄식이 들리는 듯하다.

이런 일이 다시는 없게 하자고 요란 을 떤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찰 낙산사가 불탄 2005년 4월, 그로부터 겨우 1년 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화성의 서장대가 잿더미로 변한 2006년 5월에도 그랬다. 그러나 그때 뿐, 문화재 관리는 여전히 허술하기 짝이 없고, 비상시 대처 역시 주먹구구식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숭례문 참사'는 총체적 문제점을 다시 한번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문화재 관리체제부터 문제투성이었다. 국보 1호인 숭례문과 같은 문화유산 관리를 문화재청이 맡지 않고 지방자치단체에 넘겼다. 관리주체인 서울 중구청은 수 십억원 들여 생색나는 영화제나 열었지 문화재 관리는 뒷전이었다.

그나마 평일 3명인 상주관리인도 불이 난 10일처럼 휴일이면 인력난을 이유로 1명으로 줄였고, 오후 8시 이후에는 무인경비시스템에만 의존했다. 그러니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아무 제지를 받지 않고 들어가 불도 지를 수 있었다.

방재와 경비시스템을 보면 문제가 더 심각하다. 소방차가 금방 올 수 있는 시내에 있다는 이유에선지 스프링클러도 설치하지 않았고 1, 2층에 소형 소화기 8개만 놓아 두었다.

2006년 서장대 화재 이후 문화재청이 시작한 목조문화재 방재시스템 구축사업에서도 숭례문은 유명 사찰들과 달리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다. 상황이 이런데 서울시는 개방만 서둘러 위험노출을 자초했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진화작업에서 보여준 무지와 무능이었다. 목조문화재에 대한 지식과 체계적인 화재진압 훈련이 거의 없었던 소방당국은 불이 어디에 붙은지도 모르는 채 허둥대며 지붕에 물 뿌리기만 계속했고, 불이 꺼진 것으로 잘못 판단해 일찍 잡을 수 있는 화재를 키웠다.

문화재청 역시 현장에서의 정확한 판단과 소방당국과의 긴밀한 협조보다 진화작업으로 인한 문화재 파괴만 우려하다가 소탐대실했다. 그래 놓고는 이제 와서 누구에게 책임을 떠넘길 건가.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각종 대책이 요란스럽게 나올 것이다. 당연히 대책을 마련하고 복원 계획을 착실하게 추진해야 한다. 문화재청은 이전보다 더 요란하게 숭례문을 짓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함께 불타버린 역사와 문화정신과 국민들의 가슴까지 복원하기는 어렵다.

불타 무너진 숭례문에 국화를 바치는 시민들의 마음을 헤아려 더 이상 선조와 후손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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