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변한 숭례문의 '국보 1호' 신분은 어떻게 될까.
문화재청은 일단 완전 복원 후 계속 '국보 1호' 신분을 부여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원형 대부분이 손상된 만큼 박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문화재적 가치로만 따지면 국보 지위 유지가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200억원이 넘는 복원 예산이 투입되고, 보관 중인 실측 도면에 따라 당대 최고의 목수가 총동원돼 새 건물을 짓더라도 600년 넘는 세월을 담은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재위원회 건조물분과위원장인 박언곤 홍익대 교수는 사견을 전제로 "숭례문이 국보에서 해제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목조 문화재 특성상 건물이 소실됐다면, 복원이 이뤄진다고 해도 그 가치는 크게 훼손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금산사 대적광전과 쌍봉사 대웅전도 각각 보물 476호와 보물 163호로 지정된 문화재였으나, 소실된 뒤 완전 복구됐어도 문화재 지정이 해제됐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와 함께 건조물분과위원인 김동현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도 100% 복원이 이뤄져도 '국보 1호' 신분 유지가 불투명하다는 쪽에 가깝다. 김 교수는 "숭례문 화재현장에 대한 정밀조사와 문화재위원회를 열어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면서도 "복원 공사에 사용될 목재의 80% 이상을 새 것으로 바꿔야 한다면 국보로서의 가치는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숭례문 잔재에서 전체 건축물에 사용된 목재 가운데 20% 이상을 재활용할 수 없다면, '국보 1호'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논리인 것이다.
그러나 40년 이상 국민에게 각인된 숭례문의 상징성이 부각되면 문화재청 복안대로 '국보 1호' 유지 가능성이 높다. 문화재위원장인 안휘준 서울대 교수는 개인 의견이라고 선을 그은 뒤 "목조 건물은 특성상 소실과 재건축을 거듭하는 경우가 많다"며 "본래 원형을 완전 복원할 수 있다면, 복원 건물이라도 문화적 의미가 상실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또 "복원된 숭례문의 국보 신분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붙여진 번호가 가치와는 무관한 단순한 관리 번호인만큼 숭례문을 이전처럼 '국보 1호'로 유지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위원회의 또다른 관계자도 "국보 지정과 해제는 전문가 집단의 평가와 함께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는 만큼, 문화재적 가치에 중점을 둔 전문가 평가와 달리 국보 지정이 계속돼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다면 숭례문의 지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때 자격 논란에 휘말렸던 숭례문의 상징성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숭례문은 임진왜란 때 왜군의 서울 입성 통로였다는 사실 때문에 '국보 1호' 지위를 훈민정음이나 팔만대장경 등에 넘겨야 한다는 주장에 시달렸다.
한 관계자는 "대다수 국민들이 '가보 1호'를 잃은 것처럼 참담한 심정"이라며 "이는 교과서 겉 표지와 관공서 입구를 장식해온 숭례문 상징적 의미가 '국보 1호' 급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