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 범우사문고본의 효시 '십전총서' …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1909년 2월 12일 최남선이 설립한 출판사 신문관에서 ‘십전총서(十錢叢書)’를 간행했다. 10전이라는 싼 값의 균일가 책이라 해서 그 이름을 붙인 십전총서의 첫 권은 <걸늬버 유람긔> . 두번째로 <산수격몽요결> 을 내고 발행이 중단됐지만, 십전총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문고본이었다. 산수격몽요결> 걸늬버>
1960~7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냈다면 문고본의 추억을 간직한 이들 많을 것이다. 몇백원 아니 몇십원이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젊음의 지적 갈증을 달랠 수 있던 문고본들. 을유문고, 박영문고, 탐구신서, 상중당문고, 삼성문화문고…. 파스칼의 <빵세> 부터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까지,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부터 법정의 <무소유> 까지, 문고본은 그 시절 한국인의 교양과 지식의 샘이었다. 무소유> 한국독립운동지혈사> 프로테스탄티즘의> 빵세>
작가 장정일(46)의 시 ‘삼중당 문고’는 그때의 추억, 문고본에 대한 향수로 그린 인생 이야기다. ‘열 다섯 살,/ 하면 금세 떠오르는 삼중당 문고/ 150원 했던 삼중당 문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두터운 교과서 사이에 끼워 읽었던 삼중당 문고/…/ 건달이 되어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와 쓰다듬던 삼중당 문고/…/ 우주같이 신비로운 삼중당 문고/ 그러다 나 죽으면/…/ 삼중당 문고만한 관 속에 들어가/ 붉은 흙 뒤집어쓰고 평안한 무덤이 되겠지’
1994년 첫 권 출간 후 지난해까지 일곱 권을 낸 <장정일의 독서일기> 는 “어린 시절의 내 꿈은 동사무소의 하급 공무원이나 하면서 아침 아홉시에 출근하고 오후 다섯시에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 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새벽 두 시까지 책을 읽는 것이었다”는 그의, 문고본으로부터 시작된 범상치 않은 독서 편력의 기록이다. 장정일의>
“이 쓰레기 같은 소설” “오문과 악문으로 가득한 책” “그것은 읽고 나자마자 곧바로 내 뇌의 한 부분이 될 만큼, 강력했다” 등등 거침없는 책 품평도 흥미롭지만, 책 읽는 자만이 느끼는 경이와 환희가 오롯한 글이다. 그의 말마따나 “내가 읽지 않은 책은 이 세상에 없는 책이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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