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김모씨는 설 연휴 직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자신의 집에서 황당한 기부 요청을 받았다. 30대 여성 한 명이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며 물품 기부를 재촉했다.
김씨가 헌 옷과 그릇을 선뜻 제공했지만 이 여성은 “기증품을 내면 답례로 어린이 도서 세트를 제공하는데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며 “14K 반지도 받는다”고 추가 기증을 강요했다. 김씨가 명절을 앞두고 나눔에 동참한다는 생각에 남편과 자신의 금반지를 내주었지만 그는 연락처도 남기지 않은 채 총총 사라졌다. 이 여성은 가짜 봉사자였다.
불우이웃돕기와 기부문화가 활성화 되면서 자선단체를 사칭해 물품이나 기부금을 챙겨 달아나는 사기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10일 재활용 물품 나눔 단체인 ‘아름다운 가게’에 따르면 최근 서울과 경기 분당, 대전 등에서 ‘아름다운 가게’ 봉사자를 사칭하며 도서 교환 등을 미끼로 귀금속과 쌀 등을 요구하는 수법으로 수 십만원 어치의 물품을 갈취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주로 30, 40대 여성 한 두 명이 주택가를 돌며 주부들에게 금반지 등 값비싼 물품을 먼저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기증받은 후 연락처를 남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름다운 가게’ 김광민 간사는 “매년 10여건의 피해 사실이 접수되고 있으며, 같은 지역에서 2, 3건이 잇달아 발생하기도 한다”며 “피해 사실을 깨닫지 못한 기증자를 포함하면 액수가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기부의 선의를 악용한 범죄는 지속적으로 빈발하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난해 공동모금회를 사칭해 특정 계좌번호로 기부금을 넣을 것을 요청하는 출처 불명의 전자우편이 무차별로 발송돼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또 ‘아름다운 가게’ 울산 신정점에선 엠피(MP)3플레이어, 시계 등 값비싼 물품을 훔쳐가는 도난 사고가 잇따라 고심 끝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가게 및 자선 단체들은 ▦전화나 인터넷으로 기증 신청한 가정만 개별방문 하고 ▦기증품을 받는 대가로 책 등을 별도로 제공하지 않으며 ▦기증 받으면 물품기증확인서를 발송한다고 밝혔다.
이현정 기자 agada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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