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03년 3월4일(화)자 1면은 지면 체제 및 내용의 대대적 혁신과 함께 새로운 차원의 연재물이 시작됨을 알렸다.
‘월~금요일 ‘길 위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작가의 기지와 풍자 넘치는 세상 읽기는 한 편의 콩트를 읽는 듯한 상쾌함을 드릴 것입니다.’ 연재소설, 칼럼, 에세이와 같은 기존 글쓰기 형식을 탈피, 600자 남짓한 글에 세계를 담아 매일같이 보여주겠다는 야심찬 기획이었고, 사유와 필력을 겸비한 1급 작가가 아니면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첫 주자로 나선 성석제(48)씨는 일상, 책, 인터넷 등에서 찾은 소재를 특유의 간결하고 힘있는 문장으로 쥐락펴락하다가 촌철살인의 문장으로 갈무리, 독자 속을 후련하게 했다. 2003년 3월4일부터 5월말까지 코너를 맡은 성씨는 후배 작가 김영하(40)씨에게 바통을 넘기며 “늘 열 편의 이야기를 ‘예비군’으로 두고 있어야 연재가 어렵지 않다”며 프로다운 조언을 건넸다.
장편 <검은꽃> 집필 중 ‘길 위에 선’ 김영하씨는 일제시대 잡지부터 스타벅스까지 폭넓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재치만점의 소재 포착과 예의 날렵한 문장으로 지면을 빛냈다. 김씨는 2003년 10월21일까지 100회를 꼭 채우고 “길을 가다가도 간판을 유심히 보고, 예전에 언뜻 들었던 얘기도 기억해 내려고 애쓰”느라 연재 내내 “마음 편하게 걸어 다닐 수 없”던 길 위에서 내려왔다. 검은꽃>
이후 2년 반(2003년 10월22일~2006년 2월28일)은 ‘이순원(50)의 길’이었다. 걷고 있노라면 종종 코끝이 알싸해지는 서정적인 길이었다. 그곳엔 징글맞게 여기던 말썽꾼 아들을 군대에 보내곤 아들의 옷이 든 소포를 끌어안고 펑펑 우는 어머니가 있고, 도로 위 고양이 시체가 더 훼손되기 전에 솔선해 거두는 청년이 있다. 그 길은 또 이씨의 소설 제목처럼 ‘강릉 가는 옛 길’-강릉은 작가의 고향-이어서 성장기의 추억담이 구수하게 서렸었다.
2006년 3월부턴 황인숙(50) 시인이 그녀의 고양이들과 길을 누볐다. 시인은 평소 쓰던 컴퓨터 대신 800자 원고지에 볼펜을 미끄럼질치며 길어낸, 때론 나른하고 때론 통통 튀는 일상의 이야기로 그해 연말까지 독자를 매료시켰다. 황씨가 연재를 맡으면서 세로로 길쭉하던 지면이 가로로 긴 지금의 모양으로 바뀌었다.
작년 벽두부턴 이기호(36)씨가 젊고 힘찬 이야기로 지면을 호령했다. 독자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이씨의 걸쭉한 입담에 폭소했고, 가난한 초보 아빠의 감상에 가슴 아렸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열혈 청년의 웅변에 울컥했다. 이씨가 연재 중이던 작년 4월 둘째주부터 ‘길 위의 이야기’는 게재 요일을 화~토로 옮겼다.
다섯 전임 작가의 글을 찬찬히 읽는 일은 우리 시대 최고 작가들의 내밀한 ‘문학적 원천’을 탐색하는 흥미로운 작업이기도 하다. 이순원, 황인숙씨의 글은 단행본 <길 위에 쓴 편지> (비앤엠 발행) <일일일락> (마음산책)으로 각각 묶여 있기도 하다. 일일일락> 길>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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