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이형택을 찾아라.’
20년 만의 데이비스컵 월드그룹 진출에 이어 사상 첫 본선 승리를 거둔 한국 테니스의 표정이 결코 밝지만은 않다. 세계랭킹 44위 이형택(32ㆍ삼성증권)을 앞세워 테니스강국 독일과 승패를 주고받는 접전을 펼쳤지만 후발 주자들의 기량차가 세계 수준과 워낙 떨어져 있음이 뚜렷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국은 독일과의 월드그룹 16강전에서 이형택을 제외한 다른 선수들이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일방적인 패배를 받아들여야 했다. 1번 단식으로 나선 안재성(329위)이 독일의 톱랭커인 필립 콜슈라이버(28위)에게 0-3으로 완패했고 9일(한국시간) 전웅선(321위)-안재성이 짝을 이룬 복식조도 독일에게 한 세트도 따내지 못한 채 고개를 떨궜다. 오직 이형택만이 2번 단식에서 난적 플로리앙 마이어(68위)를 누르고 1승을 챙겼을 뿐이다.
예견된 결과였다. 한국 대표팀은 이형택을 제외하고는 세계랭킹 300위 안에 드는 선수가 없다. 전웅선과 안재성, 김현준(1,045위) 등은 국제 무대에서 실력을 검증 받지 못했다. 4대 메이저대회는 물론 아직 남자프로테니스(ATP) 주관 투어대회보다도 한 단계 낮은 챌린저대회나 퓨처스대회 출전에 그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독일이라는 테니스 강국을 맞아 한국 대표팀은 이렇다 할 전략조차 짜지 못한 채 이형택의 ‘원맨쇼’에 의존해야 했다. 전영대 감독은 “일단 무조건 이형택이 단식을 잡아줘야 다음 전략이 가능하다”며 답답해 했다. 8강행의 분수령인 복식에서 이형택을 내보내고 싶었지만 체력 부담이 너무 컸다는 설명이다.
이번 대회에 나선 후발 주자군들도 경험 부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전웅선은 복식 패배 직후 “세계랭킹이 결과를 말해주는 것 같다. 중요한 포인트에서 결정짓는 수준이 독일 선수들은 차원이 달랐다”며 완패를 시인했다. 안재성 역시 “정신력이라는 것도 실력차가 너무 크면 의미가 없다.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며 세계 수준과의 격차를 인정했다.
그나마 이형택이라는 확실한 카드가 사라진다면 한국 테니스가 월드그룹 무대를 다시 밟을 가능성은 결코 높지 않다.
브라운슈바이크(독일)=김기범기자 kik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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