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부터 세계 휴대전화 업계는 크게 술렁이고 있다. 세계 3위 업체인 모토로라가 휴대전화 사업을 매각하려 한다는 소문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또 업계 4위인 소니에릭슨이나 다른 업체가 모토로라를 실제로 인수하게 된다면, 지난해 힘겹게 2위 자리를 되찾은 삼성전자로서는 큰 타격이 불가피해진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예전처럼 기민한 대응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룹의 한 임원은 “이런 소문이 돌면 삼성전자와 머리를 맞대고 업계의 판도변화, 인수합병(M&A) 움직임을 분석하면서 대응책 마련에 전력 투구할텐데 지금은 그럴 경황이 없다”고 실토했다.
10일로 특검수사 한 달을 맞은 삼성은 사실상 모든 게 ‘올스톱’ 상태다. 본사와 계열사들이 압수수색을 당하고, 사장단 및 임직원들이 잇따라 조사를 받는 등 사상 초유의 고난을 겪고 있다.
삼성전자 A사장을 비롯한 주요 계열사 사장들은 출국 금지로 발목이 묶여 해외거래선과의 연간계약을 미루고 있다. 더욱이 특검 1차 수사가 반환점을 돌게 되는 11일부터는 그룹핵심 수뇌부의 줄소환이 점쳐지고 있어 그룹측은 초긴장 상태에 빠져 있다.
세계 정보기술(IT) 업계를 주도하는 최고경영자들의 해외출장이 묶여 있는데다, 경쟁업체들이 삼성의 이 같은 어려움을 틈타 시장을 빼앗으려는 움직임도 노골화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성장 동력 발굴, M&A 등 공격 경영은 고사하고 올해 사업계획조차 아직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통상 2월 말에 열리던 삼성전자 등 12월 결산법인의 주주총회도 특검의 1차 조사기간이 끝나는 3월 중순 이후로 미뤄졌다. 사장단 등 임원들의 정기인사는 특검이 완전 종료하는 4월 23일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직원들의 동요가 심해지자, 삼성은 일단 부장 이하 직원인사만 예년처럼 3월 1일자로 실시키로 했다. 삼성 계열사 관계자는 “연초에 끝냈어야 할 사장단 정기인사 및 조직개편이 지연돼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임직원이 많다”며 “이런 상황이 앞으로 2~3개월은 더 지속될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그룹측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투자 실기(失機). 삼성전자 관계자는 “분초를 다투는 전자업종 특성상 1~2분기만 투자를 늦춰도 시장에서 밀려나기 쉬운데, 지금 추세라면 올 상반기 농사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며 “이것이 앞으로 어떤 후유증을 낳을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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