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를 예쁘게 빚어야 예쁜 딸을 낳는대.”“내가 만든 게 제일 예쁘지?”
설 연휴를 하루 앞둔 5일 오후 경북 구미시 고아읍 황산리 황산교회 사택. 널찍한 마당의 족구장을 지나쳐 교회와 붙은 단층 슬라브 집에 들어서자 시끌벅적하다. 집 한켠에는 지자체와 사회단체 등에서 보낸 작은 선물상자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이 집은 전국에서 한 가족으로는 가장 많은 13명(5남8녀)의 자녀를 둔 김석태(50ㆍ목사) 엄계숙(45)씨의 보금자리. 이날 장녀 빛나(21ㆍ경북대 물리3)부터 지난해 12월 태어난 막내 온새미까지 방안에 모여 만두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대학생만 빼고 우르르 쏟아져 나와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배꼽인사를 한다. 모두가 밝고 환한 얼굴이다. 김 목사 가족이 설을 맞아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학교 기숙사에 머물며 취업준비를 하는 큰 딸 빛나와 올해 충남대 미대에 진학한 둘째 다솜이도 내려와서 집안일을 거드니 큰 소리 한번 나지 않는다. 방안 가득히 쌓여있던 밀가루 반죽도 30분만에 만두로 완성된다.
올해 김 목사는 가족들과 함께 경기 이천에 있는 처가를 방문 할 예정이다. 부인 엄씨로서는 3년만에 가보는 친정 나들이다. 그동안 거의 매년 임신중이고 젖먹이고 살림하느라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장모님이 딸과 손주들을 보고 싶어해서 아예 가족 모두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식구들이 타고 갈 이동수단이다. 김 목사는 “12인승 대형 승합차로도 모자라 일부는 별도로 가야 할 것 같다”며 난처한 표정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모처럼 나들이에 즐겁기만 하다. 사실 지금까지 설날에 친척이나 친지 집을 방문해 세배를 한 적이 별로 없다. 부인 엄씨는 “친가 외가 모두 서울 경기지역에 있어 대식구가 움직이기 힘들고 이웃에도 많은 아이들을 보내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또 “애들 한복은 빛나와 넷째 모아만 예전에 설빔으로 따로 해 줬고 나머지는 모두 친척이나 이웃들이 준 것”이라며 “남녀 구분 없이 나이에 맞게 청소와 음식 만들기를 분담해서 한 덕분에 ‘명절 증후군’을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목사도 “아이들이 많으니 설날 뭐하며 놀까 걱정을 하지 않는다”며 웃었다. “아침에 떡국을 끓여 먹고 아이들끼리 제기차기 윷놀이 썰매타기 연날리기를 하며 놀다가 저녁에는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만두를 빚어 먹지요. 설이라도 애들한테 따로 설빔을 못해주는 것이 마음에 제일 걸리죠.”
아이들에게 새해 소망을 물어보았다. 열번째 소다미(6)양은 “엄마 아빠 말씀을 더 잘 듣고 숫자 쓰는 걸 꼭 배우겠다”고 했고, 일곱째 이든(10·초등4)군은 “독서를 더 많이 하겠다”고 한다. 첫째 빛나양은 “좋은 직장에 취직 해 고생하신 부모님 여행을 보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 목사 집에는 명절때마다 크지는 않지만 정성어린 선물들이 들어오고 있다. 특히 지자체마다 출산을 장려하는 분위기와 언론에 소개된 후 유명세를 타면서 곳곳에서 설선물이 답지하고 있다. 올해에는 고아읍사무소와 농협, 대구은행 등에서 과일이나 한과, 한복 등을 보내왔다. 1일에는 경북도 관계자들이 방문, 사과 배와 학용품, 양말 등을 전달했다.
엄씨는 “모르는 사람들이 입던 옷이지만 깨끗하게 세탁해 곱게 포장해 보낸 걸 받을 땐 정말 따스한 마음을 느낀다”며 “많은 분들의 관심 덕분에 힘이 절로 난다”고 말했다.
구미=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전병용기자 yong12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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