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경제에 경기부양 카드가 필요한가. 미국 발 경기침체 위협에 맞서 우리 정부도 '선제적으로' 경기부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신중론이 맞불을 놓는 건 당연한 이치. 잘못 만지면 손을 베일 수도 있는 날카로운 카드인 탓이다.
유혹은 달콤하다.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 사태로 인한 실물경제 타격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됐다. 미국의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5년 만에 가장 낮은 0.6%(연율 기준)에 그쳤다.
1분기 성장률은 아예 마이너스로 떨어질 것이라는 비관론이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나아가 국제통화기금(IMF)는 최근 2008년 미국과 EU의 성장 전망치를 각각 1.5%와 1.6%로 하향 조정했다. 세계 경제 성장 전망치도 4.4%에서 4.1%로 낮췄다.
미국 등이 물건을 사줄 여력이 되지 않으면 수출을 근간으로 하는 한국 경제 역시 비빌 언덕이 사라진다. 지난달 말 무디스 이코노미닷컴은 이 같은 근거로 지난해 4.9%를 기록한 한국 경제성장률이 올해는 4.5%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자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할 처지가 아니란 소리가 나온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지난 주 미국에서 열린 강연에서 기자들과 만나 "세계 경제 성장둔화로 한국 경제도 상당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한국의 현 정부가 경기부양을 하지 않는 게 좋은 것이라고 너무 강조하다 보니 이것이 상식처럼 돼버렸지만 미국이나 스웨덴처럼 필요할 때는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그 동안 경기부양에 '인위적'이란 말이 따라붙다 보니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지금은 당연히 경기부양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가장 대표적인 수단은 금리인하다. 특히 현재의 물가상승세가 수요가 늘어서(demand-pull)가 아니라, 고유가 등 공급쪽에서 비롯됐다(cost-push)는 점에서 금리인하론은 설득력을 갖는다.
비용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문제가 될 때는 긴축 정책보다는 어느 정도의 물가 상승을 용인하는 확장 정책이 낫다는 것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전략본부장(상무)은 "현재의 상황에서는 물가 불안보다는 경기 위축에 더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올해 재정 지출을 서둘러 집행하고 법인세 인하 등 새 정부가 약속한 감세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될 필요가 있다.
재정 지출이나 감세가 시간을 두고 나타나는 만큼 경기 하강 가능성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당선인은 감세와 투자활성화 등을 약속한 만큼 이를 구체적으로 진행시킬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우려 역시 여전하다. 불확실성이 커지고는 있지만 우리 경제가 경기부양책을 써야 할 정도로 어렵지 않다는 근거가 따라붙는다. 하준경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경기가 지금 침체 국면이라고 보기 어렵다.
반면 물가는 상당히 불안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심리마저 생기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리를 내려서 얻을 건 적은 반면 통화당국이 물가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잘못된 신호만 던질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9% 상승, 4개월째 3%대를 기록,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때문에 금리인하결정권을 갖고 있는 금융통화위원회도 조기 금리인하에 대해 찬반양론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미국내에서도 두차례에 걸친 FRB의 대폭적 금리인하에 대해 잘못된 선택이란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감세나 재정지출 확대 역시 단기적인 경기부양 측면에서 접근할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기업 투자환경 개선 등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경제 정책을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진성훈 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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