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압록강을 건너 신의주를 통과했다. 갑자기 일본 순사들이 눈을 부라리며 들어섰다. 엄마 품에 잠든 아이들 앞에 어김없이 멈춰서 곤봉으로 머리통을 툭 쳤다. 엄마들의 항의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소란했다.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순간 일본 순사의 호통이 터지면서 곤봉 대신 허리춤의 장검이 뽑혔다. 아이는 두 동강이 나고 몸에선 피 대신 밀가루 같은 것이 흩어졌다.
해방 전 1940년대 초반 중국에서 한국으로 내려오던 열차에서 종종 있었던 실화다. 울지 않은 아이는 인형이었거나 박제된 시신이었고, 밀가루 같은 것은 아편(opium)이었다.
■아편이 중국에서부터 한국과 일본에 전파됐지만 중국도 사실은 피해자였다. 원죄라면 아편의 원료로 개발된 양귀비를 옛날부터 중요한 약제로 써왔다는 정도다. 아편전쟁(1840~1842)으로 알려진 제1차 중영전쟁은 영국에서 공개적으로 수입되는 아편에 중국이 반발하여 금수조치를 취하자 영국이 무력으로 제압한 사건이다.
당시 중국 정부는 "우리가 아편을 팔아 당신네 국민들을 부추겨 피우게 하면 좋겠느냐"는 항의 편지를 영국 여왕에게 보냈다. 영국 의회는 "아편을 피우는 것은 영국의 상류계층이 위스키를 마시는 격"이라는 답신을 보냈다.
■마약은 그 '감당할 수 없는 유혹' 때문에 소비억제 홍보보다 공급차단 단속이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영국은 식민지 인도에서 재배한 양귀비로 아편을 만들어 중국에 공급했는데 그들의 주장처럼 '상류계층의 위스키'는 결코 아니었다. 중국이 전쟁까지 불사하며 공급을 차단하려 했던 이유는 주요 소비층이 농민과 병사 등 빈민ㆍ서민들이었기 때문이다.
농촌경제가 피폐하고 군사기능이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즐거움과 흥분을 극대화해 준다는 영국의 '위스키'가 아니라 단절된 순간의 쾌락과 미래의 인생을 맞바꾸자고 유혹하는 '흡혈귀'였던 것이다.
■대검찰청 발표에 따르면 2006년까지 마약사범이 연간 7,000명 수준으로 마약청정국에 들었던 우리나라가 지난해 1만 명을 넘어서 청정국 유지에 적신호가 켜졌다. 당국은 해외에서 제조된 마약들이 비교적 단속이 덜한 한국을 경유지로 삼고, 기발한 운송수법이 많이 개발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해할 여지가 없지 않다. 한데 마약에 빠지는 계층이 무직자나 노동자 농민에서 급증하고 있어 큰일이다. 고통과 괴로움을 순간적이나마 잊기 위한 방편으로 마약을 찾는다는 것이니 '흡혈귀'가 아닐 수 없다. 공급을 차단하는 마약과의 전쟁이 더욱 절실하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