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레이스의 오바마 돌풍이 태풍으로 커졌다. 공화 민주, 두 당이 한꺼번에 20개 주 이상에서 경선을 치르는 5일 슈퍼화요일을 앞둔 대선 기상도의 중심에 오바마가 자리 잡았다. 여론지지도에서 한발 앞선 힐러리 클린턴을 드디어 추월, 혼미한 경선 판도를 가를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오바마는 변화와 희망의 메시지로 전쟁과 국론 분열에 시달린 유권자에 어필했다. 또 각계 거물의 잇단 지지선언을 이끌어냈다. 오늘 경선 결과가 A급 태풍에 못 미치더라도, 민심을 들뜨게 한 회오리는 이내 잦아들지 않고 길고 강렬한 여운을 남길 조짐이다.
■ 오바마의 '케네디 후계' 책봉
이런 오바마 돌풍의 의미를 미국과 국제사회에 각인한 사건이 지난 주 워싱턴 아메리칸 대학의 유세 모임에서 있었다. 민주당 진보세력의 리더이자 존 F. 케네디의 동생인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오바마 지지를 선언한 것이다. 대통령의 딸 캐롤라인도 '나의 아버지와 같은 대통령'이란 뉴욕 타임스 기고를 통해 오바마 지지를 천명했다.
케네디 가의 지지선언은 유세 이벤트 차원을 훨씬 넘어선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객관적 위치에서 미국 대선을 조망하는 유럽 언론은 케네디 가문의 전례 없는 집단지지를 '케네디 신화의 후계 책봉'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영국의 더 가디언은 '캐멀롯의 기름부음', 독일의 쥐드도이체차이퉁은 '캐멀롯의 기사서품'이라고 불렀다.
아서 왕 전설 속의 가상의 성(城) 캐멀롯(Camelot)은 미국과 관련해서는 케네디 신화를 상징한다. 미망인 재클린 케네디가 1963년 케네디 암살 한달 뒤 Life 지와의 회견에서 고인이 좋아한 뮤지컬 캐멀롯의 노랫말에 빗대 "위대한 대통령은 다시 올 것"이라고 말한 데서 비롯됐다.
인종 계층 갈등과 냉전 질곡에 갇힌 미국과 세계에 희망과 미래 비전을 제시, 많은 이의 가슴을 환하게 밝혔다 이내 스러진 케네디 신화가 언제가 재현될 것이란 위무였다.
그리고 케네디 가문은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예언을 구현할 인물을 찾았다고 선포한 것이다.
각박한 현실정치에서 지나치게 낭만적 풀이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역사와 역사적 지도자에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다. 20세기 지도자 가운데도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케네디,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을 회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뛰는 열정적 믿음과 존경심을 지니고 있다.
이런 의식이 '뉴 JFK' 세례명을 받은 오바마에 열광하는 바탕이다. 아메리칸 대학 유세에는 날이 밝기 전부터 6,000여 명의 지지자가 몰려 캠퍼스 밖까지 길게 줄을 섰다고 한다.
오바마가 '검은 케네디'로 각인되기에 이른 자질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토니 모리슨은 케네디와 같은 창조적 상상력에서 찾았다. 그러나 유럽 언론은 미국인의 가슴을 밝힌 희망과 낙관과 자신감의 메시지를 넘어선 통합과 관용의 정신을 핵심으로 꼽았다.
루스벨트와 레이건이 그렇듯, 혼란과 분열의 늪에 빠진 사회를 향해 모든 장벽과 차별을 넘어 함께 밝은 미래를 개척할 것을 외치며 국민을 통합으로 이끈 것이다.
특히 케네디는 첫 카톨릭 대통령인데다 흑인 민권운동 등 사회적 진보운동을 대변한 아웃사이더 면모를 지녔다. 그러나 자신의 출신과 배경을 딛고 인종 이념 계층 간의 관용을 이끌어 내는 데 앞장서 사회 통합을 일궈냈다.
에드워드 케네디가 클린턴 부부와의 오랜 교분과 거듭된 요청을 뿌리치고 오바마에게 케네디 후계의 세례를 베푼 것도 미국 사회에 어느 때보다 절실한 통합과 관용의 리더십을 높이 산 때문이다.
■ 관용이 갈등 치유의 관건
미국의 정치 기상도 해설을 읽으면서 우리 정치 리더십의 행로를 걱정했다. 희망과 낙관을 한껏 부풀린 이명박 당선인과 인수위원회는 쓸데없는 갈등과 분열의 빌미를 만들며 민심을 잃고 있다. 경제든 뭐든, 사회 구석구석을 살피고 돌보는 관용과 통합이 가장 절실한 과제임을 되새기지 않으면 이내 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다.
강병태 수석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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