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는 받아야겠지만, 글로벌 경영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특검의 수사를 받고있는 삼성 고위 관계자는 3일 “국익을 위해 2주동안 해외 거래선과의 계약을 성사시킨 뒤 돌아와 조사를 받겠다는 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라며 이같이 항변했다. 차명의혹 계좌 문제로 특검의 참고인 조사 소환장을 받은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부문총괄 사장의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매출액의 약 90%가 해외에서 일어나는 삼성은 요즘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 임직원 60~70여명이 출국 금지돼 글로벌 경영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삼성전자의 K모 사장은 최근 해외거래선을 만나기 위해 나가려다 출국 금지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 발길을 돌렸다. 이런 사례는 한 두건이 아니다. 삼성 측은 특검이 단순히 차명의혹 계좌의 명의자여서 참고인 소환 대상자로 거론되는 사람까지 강도에 비유하며 범죄자처럼 취급하고, 비즈니스 일정을 전혀 배려해 주지 않는 것은 무리한 수사행태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삼성이 특히 아쉽게 생각하는 대목은 황 사장 조사 부문. 삼성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스타 최고경영자(CEO)인 황 사장은 이 달 초순 미국에서 애플의 스티브 잡스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컴퓨터, 휴대폰, 프린터 분야 등 6명의 글로벌 기업 CEO들과 직접 만나 반도체 납품과 관련해 20억 달러 이상의 연간 계약 체결을 맺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출국 금지조치돼 손발이 묶였다. 그렇다고 조사를 받고 나가자니 조사받는 장면이 전 세계에 알려져 계약성사에 악영향을 줄 것이 뻔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해외 비즈니스를 하는 임원들도 특검의 조사를 받는 장면이 노출될 경우 영업활동에 큰 지장을 받는 데, 세계 반도체 업계에서 ‘닥터 황’으로 불리는 황 사장은 그 명성이나 위상에 비춰볼 때 타격이 엄청날 것”이라며 “국보급 사장의 체면과 명예를 배려해 주는 차원에서 해외 거래선과 올해 연간 계약 성사를 끝낸 뒤 조사해도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물론 특검의 생각은 다르다. 특검 고위 관계자는 최근 황 사장이 이 같은 이유로 소환에 불응하는데 대해 “계약 내용과 사업전망에 따라 계약이 이뤄지는 것이지, 사람 얼굴보고 계약하느냐”며 “떳떳하다면 조사받고 나가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삼성 쪽에서 특검이 삼성을 망친다, 소환 통보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며 “경찰이 강도를 잡다보면 강도가 ‘경찰이 대낮에 사람 친다고 난리를 친다’”고 비유적으로 언급, 삼성의 행태를 강도높게 비난하기도 했다.
특검의 이 같은 강경 기조는 삼성 임직원들이 고의로 수사에 비협조적이고, 증거를 인멸하려 한다는 의구심이 배경이 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삼성의 글로벌 비즈니스 관련 임직원들을 경악시키고 있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임직원들에 대해 강도에 비유하는 등 원색적인 발언을 하는 특검 관계자들의 발언은 국제 비즈니스의 ABC도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등 주요 정보기술(IT) 기업들은 매년 초 주요 해외 거래선들과 만나 연간 물량계약과 주요 비즈니스 사안을 논의한다.
한해 농사가 결정되는 중요 행사이기 때문에 CEO가 회사를 대표해 직접 참석, 상대측 CEO와 담판을 하고, 때로 추가 계약 성사 등 부수적인 소득을 올리기도 한다. 삼성 관계자는 “계약 체결 시 누가 참석하느냐는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글로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어 함께 식사 및 파티 등에 참석해 개인적 친분을 두텁게 쌓으면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교환하는 등 유대를 단단히 해둬야 거래선을 유지할 수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단순 참고인이라면 황 사장처럼 국제적 지명도가 있는 CEO에 대해서는 비즈니스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특검도 배려를 해줘야 한다”며 “삼성도 또한 오해가 없도록 앞으로 임직원들이 성실히 수사에 임하겠다는 ‘신사 협정’을 특검과 맺고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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