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말없이 그저 아름답다.
드러누워 바라본 입추의 하늘과 해바라기, 점증하며 번지는 연둣빛 바다, 고리처럼 퍼져나가는 연못 위의 물무늬…. 온갖 담론과 테크닉으로 무장한 현대미술의 악다구니에서 한발 물러선 이 회화적 사태는 너무 익숙해 곧잘 잊고 마는 ‘풍경의 힘’을 재생한다. 그것은 보는 이를 안심하게 하는 고전적 아름다움이며, 제 정신의 한 구석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인문적 경험이다.
‘감정이 녹아 들어간 풍경’으로 유명한 ‘제주의 화가’ 강요배(56)의 개인전 ‘스침’이 2년 만에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4~26일 열린다. 바람이 수면을 스치는 느낌, 붓이 캔버스 위를 스치는 소리, 그림을 그릴 때 뇌리를 스치는 상념, 굳이 엮지 않아도 좋은 스쳐간 인연, 이 모든 것을 ‘스침’이란 제목에 담았다.
작품들은 부드럽고 편안해졌다. 난한 색들을 많이 빼내고 명도에도 큰 낙차를 두지 않았다. 형상과 화면도 최대한 평범하게 짰다. 대신 “이해하기보다는 육질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림, 비비고 스치는 듯한 촉각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해 화면의 결을 만들어내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매끈한 붓이 단조롭고 싫어 돌은 돌로, 나무는 나무로 그렸고, 붓 대신 신문지를 구겨 뭉청뭉청 물감을 찍어 발라보기도 했다. 자기를 가장 잘 말하는 것은 자기 자신. 빠르고 강파른 특유의 필치까지 더해지니 까슬하고 휘모는 마티에르가 고스란히 파도고, 바위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다. 구름은 흘러가는 것 같고, 바닷바람은 뺨을 스치는 듯하다.
화면을 비우기 위해 형상들은 최대한 소거됐다. 사람의 모습은 어느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달과 절벽, 바다와 하늘, 파도와 바위 등이 짝패를 이뤄 분절되는 간결한 화면은 그래서 종종 추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마음의 지진계에 따라 구상과 추상 사이를 진자운동 할 뿐”이라고 말한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강요배는 오랫동안 ‘4ㆍ3의 작가’였다. ‘강요배’란 이름부터 제주 4ㆍ3사건 당시 빨치산으로 오인돼 학살당한 동명이인들이 하도 많아 부친께서 세상에 둘도 없는 이름을 짓겠다며 붙여주신 것. 이제껏 같은 이름을 한명도 찾지 못한 그는 숙명처럼 4ㆍ3을 그렸고, 오랜 세월 ‘민중미술가’라는 수식을 달고 다녔다.
도시의 우악스러움에 지쳐 20년간에 걸친 서울생활을 청산한 그가 어머니 품을 파고들듯 제주로 돌아간 게 1992년이니 어느덧 16년이다. 그는 ‘편안하다’는 동사를 여러 번 반복하며 자신을 치유한 제주 생활을 묘사했다. 숨통을 틔워준 제주의 자연을 통해 풍경화의 영토를 확장해온 그에게 이젠 분노와 격정을 접은 것이냐고 묻자 그의 손사래.
“무슨…, 지금도 내 작업은 민중미술이에요. 민중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삶의 터로서의 자연 풍경이니까요.” 지난해부터 민족미술인협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민중이란 서민을 전체적으로 일컫는, 굉장히 넓은 의미로 쓰여야 한다”고 말한다. “풍경은 반민중적이라고 낙인 찍던 시절도 있었지만, 싸우려고 민중미술을 하나? 편안하라고 하는 거지. 민중들이 편안해야죠. 그 편안함을 방해하고 억압할 때, 그때 맞서 싸우는 겁니다.”
어떻게 부르든 괜찮다.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하므로, 아름답지 못한 것이 죄일 뿐이다. (02)720-1524~6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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