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많은 국민에게 ‘세계화’란 말은 더러운 단어가 됐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최근 전한 독일 여론의 분위기다. 세계 1위의 수출국인 독일이 반 세계화 기류에 휩싸여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고용 불안정과 부의 불평등을 키웠다는 반감이 커지면서 좌파정당이 빠르게 지지세를 넓히고 있다. 이에 따라 좌우파간 대연정으로 중도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독일 정치계의 노선 변화도 예고되고 있다. 최근 글로벌 경제 위기로 인해 세계화를 반성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흐름이다.
10년 전 세계화를 두고 위험이냐 기회냐로 양분했던 독일 여론은 이젠 세계화를 위험이라고 보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최근 독일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알렌스바흐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세계화를 위험으로 보는 견해가 기회라는 견해보다 2배 가량 높았다.
세계화에 대한 반감은 수출 중심의 독일 경제를 감안하면 일견 모순으로 보인다. 실제 좌우파간 대연정으로 탄생한 앙겔라 메르켈 정부의 중도실용주의적 경제개혁으로 독일 경제가 부활하고 있는 상황과도 어긋난다. 높은 실업률과 저성장에 시달리던 독일은 수출이 살아나면서 최근 두 해 연속 2.5%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지난해엔 실업률도 10% 아래로 떨어져 2000년 이후 최고의 성장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독일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세계화의 혜택을 부자들만 누린다”는 의견이 1998년 32%에서 2006년에는 50%로 급증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독일 국민 83%가 경제 회복의 혜택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인플레이션과 세금을 감안한 국민들의 실제 소득수준도 1980년대와 비교해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달 27일 치러진 독일 헤센주 주의회 선거는 이런 불만을 수면위로 끌어올리면서 정치권을 긴장시키고 있다. 금융 수도인 프랑크푸르트가 있는 헤센주는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교민주당(CPU)의 텃밭이었다. 하지만 사회민주당(SPD)이 36.7%로 대거 약진했고 동독의 구 공산당에 뿌리를 두고 있는 좌파당이 7%를 획득, 창당 1년 만에 의회에 진출하는 성과도 거뒀다. 세계화와 친시장 정책에 대한 국민적 좌절감이 좌파의 거센 돌풍으로 나타났다는 평가다.
특히 2009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세계화에 비판적이면서 재분배를 강조하는 좌파당이 구 동독지역을 중심으로 태풍의 눈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이 같은 기류 변화에 중도노선으로 나아가던 사민당이 최저임금제 도입 등을 내세우며 재빨리 좌측으로 돌아서고 있다.
기민당의 메르켈 총리마저 보수주의자로선 이례적으로, 최근 근로자 복지제도를 축소해버린 기업주에게 항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더 타임스는 “독일이 빠르게 왼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전했고, 베를린 자유대학의 게로 노이게바우어 교수는 “독일인들이 세계화의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으며 정치인들 이를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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