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남대문시장의 한 제기용품점. 대목인 설 명절이지만 전혀 체감할 수 없다.
최근 두 달간 매출이 고작 제기용품 1세트. 상점 주인 오 모씨는 "형편이 그나마 나은 사람들은 대형 마트나 전문점을 찾고 있고 서민들은 경기가 좋지 않아서 재래 시장을 외면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인근 액세서리 전문점의 문 모 사장은 "물건을 단 하나도 팔지 못하는 날이 한 달에 열흘 정도 된다"며 "옆 점포는 5개월 동안 임대료를 내지 못하다 결국 문을 닫았다"고 했다.
동대문시장도 사정은 비슷하다. 옷 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하루 50만원대였던 매출이 작년 가을부터 10만원대로 떨어졌다"며 "인근 점포의 20% 정도가 매물로 나온 상황"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초 서울 구의동 아파트 단지 내 문을 연 식료품 점도 개업 6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불과 100m 거리의 대형 마트와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서민들과 함께 숨을 쉬어 온 재래 시장, 영세 점포들이 고사 위기를 맞고 있다. 한 두 해 일이 아닌 만큼 침체의 골도 깊다. 지방 외지가 아니라면 곧 백화점과 대형 마트, 그리고 대기업 계열 편의점만 남는 시대가 머지 않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난해 대형 마트와 영세 점포의 영업 실적은 극과 극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형 마트(기타 대형종합소매)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에 비해 9.8% 증가했다. 2004년 이후 8~9%의 높은 증가세다. 편의점 역시 2006년(7.9%)을 제외하고는 매년 두 자릿수 매출 증가율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영세 점포는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지난해 경기가 회복세를 보였다지만, 기타종합소매업(편의점을 제외한 50평 미만 소형 상점) 매출은 오히려 감소(-2.9%)했다. 소매업종 중 유일했다. 1995년 25개였던 대형 마트수가 2005년 316개로 연 평균 30% 가까이 증가하는 동안, 영세 점포는 73만9,059개에서 58만5,996개로 무려 15만개 이상이 사라졌다.
이런 재래시장을 이날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찾았다. 설 명절을 앞둔 서울 봉천동 원당시장은 이 당선인 일행 외에 손님들은 거의 뜸했다. 상인들은 이 당선인이 시장에 들어서자 "서민들 좀 살려주세요"라고 외쳤다. 당선인이 생선 좌판을 깔고 앉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장사가 안 되는 것 같다"고 하자, 할머니는 "될 겁니다. (당선인이) 오셨으니까"라며 눈물을 훔쳤다.
이 당선인은 한 식당에 들러 순대국으로 식사를 하며 "대형 마트에 밀리고 주차장도 제대로 없어서 재래 시장 상인들 걱정이 너무 많다. 재래 시장 장사 잘 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으니 상인들도 스스로 잘해서 손님들이 올 수 있도록 해야 된다"고 말했다.
역대 정권치고 재래시장, 영세상인 지원을 약속하지 않은 정권은 없었다. 선거 때면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도 이 곳이었다. 이번엔 뭐가 좀 달라질는지….
이영태기자 ytlee@hk.co.kr문준모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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