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이란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내는 작업쯤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반대로 극히 쉬운 것을 굳이 어렵게 구성하는 면도 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쯤의 일로 기억한다. 당시 뭣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연로한 큰어머니가 가족들 앞에서 그 자리에 없는 작은아버지를 성토하고 있었다.
큰아버지가 듣기 민망했던지 넌지시 만류하자 큰어머니가 대뜸 “왜 하지 말아요?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인데.”라고 말을 받았다.
갈등의 내용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나였지만 이 말에는 귀가 퍼뜩 띄었다. 그렇다, 고기가 아무리 맛있어도 씹지 않고 넘긴다면 먹으나 마나다. 그리고 말을 하면 실제로 뭘 먹는 것도 아닌데 맛 같은 게 느껴진다.
그 후로 나는 말을 할 때 느끼는 쾌감이 도대체 어디서 오나 하는 막연한 호기심이 지금껏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마 내가 언어를 연구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이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던 중 우연히 들뢰즈를 읽다가 스토아학파의 사건/시뮬라크르의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
즉 맛이란 비물체적인 것인데 이는 물체적인 것들이 부딪칠 때 물체들의 표면에서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표면효과이자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기의 맛은 이가 고기를 파괴하는 표면들 사이에서, 다시 혀가 그 표면을 훑는 사이에서 발생하는 효과이고, 말의 맛은 언어의 음운법칙에 따라 구강내 발음기관들이 서로 부딪는 표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맛의 효과인 셈이 된다. 그러니까 말도 음식처럼 씹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옛날 우리 큰어머니는 그냥 감각으로 터득한 사실을 철학자들은 정말 힘들게 설명했구나!
그러므로 물체적인 것은 비물체적인 것을 생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 비물체적인 것이 우리의 존재를 알게 해주는 존재자(시뮬라크르)가 되므로, 우리가 물질을 욕망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존재를 느끼기 위해서이다. 오늘날의 물신주의는 물질 자체에 집착하게 만드는데 이는 도착증이다. 말은 해야 맛이듯이, 물질은 제대로 쓸 때 맛이 난다.
김근 서강대 교수·중국문화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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