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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라면 꼬불꼬불한 이유는 아시고 드시나요

입력
2008.02.0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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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베란다 너머 불빛이 하나둘 사위어가고 케이블TV에서는 지역광고가 나올 무렵, 뱃속에서 하릴없이 ‘꼬로록’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도 찾아온 실존적 결단의 순간, “투 이트 오어 낫 투 이트(To Eat or Not To Eat)!” 잠깐의 번민 뒤, 결국 부엌으로 간다. 보글보글 기포가 오르는 양은 냄비 속으로, 봉지에서 꺼낸 120g분의 행복을 뚝 분질러 넣는다. 오늘도 거르지 못한 면식수행(麵食修行). 내일 아침 부어 있을 얼굴은, 내일 아침 몫의 고민으로 족하다.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 유혹. 중독의 이름은, 라면이다.

■ 너희가 라면을 아느냐

모두가 몸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남녀노소 누구나 라면 이름 열 개쯤은 욀 수 있다. 시험기간 골목 분식집에서, 혹한기훈련의 A형 텐트 안에서, 배낭여행 중 유럽의 고성에서…. 라면은 언제나 주린 배와 영혼을 채워주는 안식이었다. 지금도 모니터 앞에서 저글링을 감행 중인 아해들의 전투식량 라면. 하지만 우리는 라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꼬불꼬불 라면에 관한 가장 원초적인 의문. 면발이 꼬불꼬불한 이유는 좁은 공간에 많은 양을 담기 위해서다. 면발을 곡선으로 만들 경우, 제조공정에서 기름 흡수와 수분 증발에 드는 시간도 줄일 수 있다. 조리시간도 줄여주고 유통시 파손도 방지할 수 있다. 라면 한 가닥의 길이는 보통 65cm, 한 봉지의 총 길이는 49m다.

▦칼로리 라면 한 그릇의 열량은 평균 520kcal. 탄수화물이 80g, 단백질 10g, 지방이 17g 정도 포함돼 있다. 영양에 비해 칼로리가 높은 편이다. 얼굴을 붓게 만드는 주범인 소금 함량은 3~3.5g.

▦스프 쇠고기, 간장, 핵산조미료, 포도당, 마늘, 양파, 고추 등 수십 가지의 재료를 배합해 만든다. 주원료를 고압에서 처리한 뒤 진공농축, 건조, 분쇄 과정을 거쳐 베이스를 만들고 조미료와 향신료를 섞는다.

▦영양 라면이 노란 빛을 띠는 것은 주원료인 소맥분이 가지고 있는 후라보이드 색소와 함께, 영양을 위해 첨가된 비타민 B2 때문이다. 스프의 원료인 돼지뼈와 닭뼈에는 변비 해소, 피로회복, 콜레스테롤 저하 등에 효과가 있는 콘드로이틴 황산이 비교적 많이 들어있다.

▦컵라면 끓지 않는 물에도 컵라면이 잘 익는 것은 감자 전분 덕분이다. 컵라면은 밀가루보다 빨리 익는 성분을 가진 전분의 비율이 높다. 감자 전분은 봉지라면에도 섞여있는데 면발을 쫄깃하게 만든다.

▦위생 유탕 과정을 거치지만 라면을 튀기는 기름은 비교적 깨끗하다. 분당 300개 가량의 라면이 튀겨지는데, 이때마다 5kg 정도의 신선한 기름이 새로 보충된다. 수분 함량이 낮으므로 방부제를 사용할 필요도 없고, 먹기 전에 끓이므로 다시 한 번 살균과정을 거치게 된다.

■ 너는 어디서 왔니

그런데 라면이라는 음식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라면의 유래와 관련한 여러 설이 있지만, 믿을 만한 이야기는 중국 기원설이다. 밀가루로 국수를 만드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반죽을 얇게 편 다음 칼로 자르는 방법과, 반죽을 양손으로 잡아 늘인 후 절반으로 접고 다시 늘이기를 반복하는 방법이다. 후자의 방법으로 만든 면을 납면(拉麵)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라면이라는 이름의 어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 면은 일본에 에도(江戶)시대 중기인 18세기에 전래돼 중국국수라는 뜻의 ‘지나(支那) 소바’로 팔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된장으로 맛을 낸 미소라멘, 돼지뼛국물로 만든 돈코츠(豚骨)라멘 등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1958년, 마침내 면을 쪄서 양념을 입힌 다음 다시 건조시켜 포장한 라면이 등장했다. 쌀밥의 발견에 견줄 만한, ‘인스턴트 라면’의 탄생이다.

한국에 라면을 들여온 것은 삼양식품의 창립자인 전중윤 회장이다. 시장 귀퉁이에서 팔던 ‘꿀꿀이죽’이 가장 인스턴트한 식품이던 1963년, 라면이 생산되기 시작한다. 처음엔 생소함 탓에 눈길을 끌지 못했지만, 간편한 조리법과 맵싸하게 입에 달라붙는 맛이 곧 대중을 사로잡았다. 1970년대 초의 이른바 ‘혼분식 장려’ 정책은, 라면이 국민음식이 되는 데 날개를 달아줬다.

현재 인스턴트 라면의 최대 소비국은 중국. 2006년 기준으로 442억 6,000만개가 팔려 전 세계 소비량의 35%를 차지했다. 다음이 인도네시아(124억개), 일본(54억 3,000만개), 미국(39억개), 한국(34억개) 순이다. 아시아 국가뿐 아니라 독일, 영국 등에서도 라면이 팔리고 있으며 1990년대 식량원조 프로그램 이후 북한에도 라면이 유입됐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 라면 맛있게 끓이는 비법 4가지

라면을 가장 맛있게 끓이는 방법을 물으면 고수들은 하나같이 “포장지에 쓰여 있는 조리법 대로 끓이는 것이 최고”라고 대답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라면 개발자들이 숱한 실험 끝에 얻어낸 최적의 국물 양, 끓이는 시간 등을 이 조리법에 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리법에 나오지 않는 비법, 라면을 더 맛있게 끓여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라면 개발자들에게 물어봤다.

한 회사의 라면 조리법에는 “물을 끓인 후 면과 분말스프, 후레이크(건더기)를 같이 넣고”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첫번째 궁금증이 생긴다. 면과 분말스프, 후레이크를 한꺼번에 몽땅 다 털어 넣어야 하는지, 아니면 순서대로 넣어야 하는 것인지?

삼양식품 개발팀 관계자는 “물이 끓기 직전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올 때 분말스프와 후레이크를 먼저 넣고, 다시 물이 끓어오를 때 면을 넣어라”고 귀띔했다. 물에 소금이 들어가면 끓는점이 높아져서 100℃ 이상에서 국물이 끓는다. 물의 온도가 이처럼 높아지면 라면에 포함된 전분에 끈기가 생겨 면발이 더 쫄깃해지면서 소화시키기에도 좋은 상태가 된다. 게다가 짭짤한 국물이 면에 잘 스며들어 깊은맛을 낸다.

두번째는 면발에 탄성을 주는 비법. 면을 끓이면서 집게로 들었다 놓았다 하면 면이 순간적으로 뜨거워졌다 식었다 하면서 한결 쫄깃한 맛이 난다. 라면 전문점에서 많이 쓰는 방법이다. 면을 들었다 놓으면 국물 온도가 낮아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지만, 열 전도율이 높은 양은냄비에 끓이면 국물 온도가 높게 유지돼 조리시간이 길어지지 않는다.

세번째는 끓이는 시간이다. 라면 맛은 불을 끄기 전 최후의 1분이 좌우한다. 조남철 농심 면개발팀 수석연구원은 “조리법에 나온 시간보다 1분을 덜 끓이면 꼬들꼬들한 면을 즐길 수 있고, 1분을 더 끓이면 부드러운 면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조 연구원은 “그러나 조리법보다 1분 이상 오래 끓이면 면이 금세 불어버릴 뿐아니라 면에 들어 있는 전분이 흘러나와 국물까지 탁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계란, 파, 떡 등을 넣는 시점도 중요하다. 취향에 따라 라면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먹을 수 있지만 끓는 도중에 계란, 떡 등을 넣으면 국물 온도가 낮아져 면의 쫄깃함과는 안녕을 고해야 한다.

첨가하는 재료를 푹 익히고 싶다면 면을 넣기 전에 분말스프와 함께 넣고, 그렇지 않다면 다 끓인 후 넣어야 면의 쫄깃함과 부재료의 맛을 고스란히 즐길 수 있다. 떡, 만두 등은 끓는 물에 데치듯 익혀서 라면을 끓인 후 넣는 것이 좋다. 계란은 불을 끄기 직전에 넣어야 국물이 깔끔하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 라면의 무한변신 맛짱! 멋짱!

끓여먹는 것이 통상적인 조리법인 라면. 가끔 비벼 먹기도 하고, ‘파 송송 계란 탁’ 넣어 맛을 내기도 한다. 추울 때는 고춧가루 팍팍 뿌려 먹으면 콧잔등 위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일반적으로 라면은 가장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끼니다. 물만 넣고 끓이면 된다. 오죽하면 요리에 자신없는 사람들도 “내가 라면 하나는 잘 끓여”라고 입을 모으겠는가.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누구 하나 라면 못 끓이는 이는 없다. 끓인 물만 부으면 되는 컵라면까지 있으니. 라면에 계란과 김치 넣어 끓이는 것은 기본이고, 거기다가 파나 햄을 곁들인다면 웬만큼 고수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이렇게 몇가지 첨가물을 넣어 끓여 먹는 것만이 라면 요리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다 보면 천하의 진미, 최상의 요리로 둔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라면이다. 라면은 밥 차려 먹기 귀찮을 때 ‘후루룩’ ‘후딱’ 해치울 수 있는 간편식이기도 하지만, 6성급 호텔의 코스요리를 무색케 할 정도로 화려한 변신을 하기도 한다.

한 라면 제조사가 2001년부터 매년 개최해온 ‘라면요리왕’ 대회에는 상상을 초월한 라면요리의 향연이 벌어진다. 각종 라면 동호회들은 수백가지가 넘는 라면 요리법을 서로 공유하고 있을 정도다. 라면을 이용한 롤, 라면 케익, 라면 스테이크는 물론, 라면 냉채, 그라탕, 샐러드, 햄버거, 부침개, 떡, 여기다 라면 젤리까지.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음식에 라면이 재료로 등장한다.

사진을 보자. 눈을 씻고 봐도 어느 하나 일반적인 라면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삶기, 끓이기, 굽기, 찌기, 튀기기, 졸이기 등 온갖 조리 방법을 다 동원해 만든 음식들이다. 라면 코스 요리에는 당연히 애피타이저와 메인, 그리고 디저트까지 포함된다. 중식, 일식, 양식, 한식 등 장르 또한 다양하다. 이 정도면 “나도 라면 요리는 할 줄 알아”라고 쉬이 말했던 사람들 가슴이 뜨끔할 것이다.

요리 이름은 붙이기 나름. ‘왕의 만찬’ ‘당신을 위한 만찬’ ‘꿈의 왈츠’ 등 거창한 이름부터 ‘웰빙 냉라면&샐러드’ ‘라면탕수육’ 등 심플한 이름까지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명명하면 그것이 곧 라면의 재탄생인 것이다.

농심 홍보팀 최호민 부장은 “라면도 과거 대량생산시대의 획일적인 소비에서 벗어나 사회 다변화에 걸맞은 개별적이고 독특한 소비 형태가 자리를 잡고 있다”며 “한국의 고도 경제성장기에 라면이 배고픔을 면하기 위한 주식이었다면, 지금은 간편식부터 식도락까지 넘나들고 있다”고 말한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지만 라면의 변신도 무죄다. 숙취를 달랜다고, 밥 짓기 귀찮다고, 배는 출출한데 식사시간은 아직 멀었다고, 라면을 먹던 당신들. 이번 주말에는 나만의 독특한 상상력을 동원해 새로운 라면 요리에 도전해 보자. 그 순간 당신도 훌륭한 라면 요리사가 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사진 제공 농심

■ 내 인생 추억의 라면

라면의 추억.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잊지 못할, 지난 시절을 회상할 때마다 짜릿하게 떠오르는 라면 한 그릇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음식 전문가 4명에게 ‘평생 가장 자극적’이었던 라면의 추억에 대해 물어봤다.

이원우 / 메뉴판 닷컴 대표이사

스무살 청춘. 군에 갓 입대해서 제일 먼저 배운 게 라면 끓이는 일이었죠. 졸병 시절 동기 한 명과 함께 야간에 라면을 끓이는데, 먹을 욕심에 조그만 전기냄비에 무려 12개의 라면을 집어넣었어요. 면을 산처럼 쌓아놓고는 스프는 5개 분량만 넣었지요. 넘칠까봐 물은 제대로 붓지도 못했습니다.

한밤중에 몰래 끓여먹는 라면은 힘든 군 생활에서 일종의 안식이었습니다. 문제는 항상 이 라면이 남았다는 것이죠. 10개만 끓이면 될 것을 고참은 항상 12개를 끓이라 시켰으니. 먹다 남아 불어터진 2개 분량의 라면을 막내인 제가 도맡아 처리해야 했고. 지금도 그때 먹었던 라면은 눈 감고도 냄새로 알아맞힐 수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제대하고 난 뒤에는 그 라면에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말이죠, 하하!

박재은 / 요리사ㆍ음식 칼럼니스트

몇 년 전 개봉했던 일본 영화 <연애사진> . 일본의 청춘 스타 히로스에 료코가 주연했던, 주인공인 두 연인이 찍어대는 사진을 매개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극 중 주인공 시즈루가 맛있게 먹는 ‘마요네즈 라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을 보고 저도 너무 먹고 싶은 나머지 바로 컵라면과 마요네즈를 사 와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죠.

자그마한 컵라면에 마요네즈를 적당량 넣고 풀어 먹는 것인데 생각보다 맛있었어요. 요즘도 입맛이 없어 식사를 거르거나 체력이 떨어질 때 가끔 먹습니다. 사실 일본의 컵라면들은 국물이 우리것보다 덜 매워서 마요네즈를 넣어도 고소한 맛이 어울려 크게 비위가 상하진 않아요. 제 경우엔 ‘ㅅ’라면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 먹곤 하는데, 좀 안 어울리지만 기분전환용으로(주위 사람들은 역겹다고 다 도망가요) 딱이에요! 내 인생 잊지 못할 라면입니다.

정문환 / 롯데호텔서울 한식당 무궁화 조리장

맛있는 라면은 먹는 장소와 시간이 만들어 주는 게 아닐까요. 2주에 한 번 정도 주말 등산길에 항상 빼놓지 않고 챙기는 것이 있는데, 다름아닌 보온병에 담은 뜨거운 물과 컵라면입니다. 산에서는 취사활동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보온병이 꼭 필요하죠.

몇 시간 동안 땀을 흘리며 올라간 산 정상에서 출출함을 달래주고 휴식도 안겨주는 컵라면의 맛은 어떤 정찬보다 훌륭합니다. 특히 요즘같이 쌀쌀한 날씨를 뚫고 겨울 산행을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등산 아이템이 바로 몸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컵라면이죠. 안 먹어본 사람은 모릅니다. 정상에서의 라면 국물 맛! 다른 등산객들이 얼마나 부럽게 쳐다보는데요.

김상영 / 푸드 스타일리스트

어린 시절 주방은 거의 어머니의 독점 공간, 멀리서나 요리를 구경할 수 있는 신비스러운 장소였습니다. 가끔 어머니가 안 계실 때 들어가 먹을거리를 찾다가 처음으로 요리라는 걸 경험하게 해준 게 바로 라면이었죠. 가장 만들기 쉽다는 생각에 요리에 입문케 해준 라면. 그냥 설명서대로 하다가 조금씩 용기가 나면서 각종 재료를 첨가해 먹곤 했죠. 하루는 너무 복잡하게 끓여 먹던 라면에 물려서 고민하다 냉장고 야채보관실에 남아있던 마늘 몇 조각과 양파, 그리고 김칫국물 몇 숟가락을 넣고 끓여봤죠.

“이렇게 맛있는 라면은 처음이야.” 언니와 동생이 탄성을 질렀습니다. 자칫 느끼해질 수 있는 라면의 뒷맛을 개운하게 해주고 스프와 환상의 조화를 일궈낸 마늘과 양파의 힘에 놀랐던 경험이에요. 지금도 친정에 들르면 그 라면을 기억하는 언니와 동생이 그때처럼 라면을 끓여달라고 조르곤 해요. 자매들이 라면을 끓여 먹으며 옛날 얘기를 하는 재미, 라면 국물만큼 시원합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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