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2월 초 코스닥 상장기업 M사는 "캔 내부에 소형 냉매실을 설치, 2분 이내에 섭씨 25도의 음료를 4도로 냉각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 중"이라며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 천문학적 로열티 수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른바 '원더캔'이라 불리는 냉각캔 소동의 시작이었다.
불과 한 달 전 4,600원대였던 M사의 주가는 2월 말 3만8,000원대로 폭등했다. 그러나 냉각캔이 개발됐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금융감독원은 99년 회사 대표를 시세조종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으나 '과장은 인정되나 범죄의도는 없어' 기소유예 처분에 그쳤다.
▦ 2005년 11월 초 또 다른 코스닥업체인 플래닛82가 특급호텔에서 '고감도 나노 이미지 센서 칩' 기술시연회를 열었다. 빛이 거의 없는 곳에서 촬영해도 영상을 선명하게 잡을 수 있는 세계 최초의 획기적 기술로, 3개월 내 양산이 가능하며 엄청난 부가가치를 낳을 것이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실제 시연에서 이 칩을 장착한 카메라는 다른 카메라에 비해 훨씬 또렷한 영상을 제공했다. 다른 카메라엔 적외선 차단 필터가 부착된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시연회 전후 1,600원대였던 이 회사 주가는 단기간에 4만7,000원대까지 수직 상승했다.
▦ 엊그제 이 회사 대표인 Y씨가 신기술을 개발한 것처럼 허위 공시해 시세를 조작한 후 차명계좌에 숨겨둔 주식을 내다팔아 350여억원의 차익을 남긴 혐의로 구속됐다. 그런데 문제의 기술을 처음 개발한 곳이 산업자원부 산하 전자부품연구원(KETI)이란다.
더구나 이름도 없던 플래닛82가 2003년 50억원에 이 기술을 사들여 칩 개발에 나선 이후에도 산자부는 기술개발에 매년 15~20억원을 지원했다. 시연회 때는 산자부가 앞장 서 언론홍보에 열을 올리고 "정부 지원으로 최첨단 기술이 개발되는 성과를 거뒀다"는 보도자료까지 돌렸다.
▦ 산자부와 KETI까지 의혹에 휩싸이게 한 이번 파문으로 코스닥 시장의 불량성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횡령공시 48건, 불성실 공시법인 지정 93개사, 주가조작 혐의 52건 등 검은 거래로 얼룩진 지난해의 기록을 더욱 더럽힌 셈이다.
젊은이들에게 벤처신화의 꿈을 키워줘야 할 '자본주의의 꽃'이 거짓과 사기로 시들어가는데도 당국의 대응은 늘 솜방망이다. '재수 없이 걸려도 남는 장사'라는 투전판식 인식이 횡행하는 이유다. 시가총액이 한때 플래닛82에 뒤지는 수모를 당했던 아시아나항공이 코스닥을 떠나 코스피시장으로 가는 뜻을 알 법도 하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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