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조원대의 소송가액 때문에 ‘단군 이래 최대소송’이라며 큰 관심을 모은 삼성차 채권환수 소송의 1라운드는 일단 채권단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하지만 양측 모두 항소가 확실해 상급심의 최종 결론이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삼성이 31일 1심 선고에 따라 채권단에 지불해야 할 금액은 삼성생명 주식 매각대금과 7,000억원에 달하는 지연 이자 등 총 2조3,000억원이다. 서울보증보험이 이미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넘겨받은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 중 116만주 가량을 주당 70만원에 팔아 8,200억원 가량을 회수한 점을 감안하면, 이날 판결로 삼성 측이 삼성차 부실로 인해 떠안게 된 책임금액은 총 3조1,000억원을 넘어서게 됐다.
삼성차 채권 환수 소송은 1999년 삼성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채권단이 손실을 입자 이를 보전하기 위해 이건희 회장이 자신의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를 내놓은 데서 비롯됐다.
삼성은 당시 삼성생명 비상장 주식의 가치를 주당 70만원으로 매겨 채권단에 넘기면서, 주식 처분액이 채권 손실액 2조4,500억원에 미달할 경우 나머지 손실분도 보전해주기로 합의했다. 채권단은 이후 삼성생명 상장 지연 등으로 주식을 처분하지 못하게 되자 약정금 2조4,500억원과 연체이자, 위약금 등 5조2,000억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법원이 이날 채권단의 손을 들어준 것은 무엇보다 삼성이 채권단에 2조4,500억원을 지급하기로 한 합의서가 유효하다고 판단한데 따른 것이다. 삼성은 그동안 “정부와 채권단의 강압으로 합의가 이뤄졌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부실 금융회사에 공적자금을 투입한 상황에서 이 같은 합의를 요구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당시 채권단이 삼성에 대한 금융 제재를 추진하자 삼성이 한빛은행에서 1,900억원을 인출하는 등 역으로 채권단을 압박한 점 등을 근거로 재판부는 “원고(채권단)들이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했다고 보기도 힘들다”고 밝혔다. 오히려 “삼성이 채권단과의 합의를 통해 재무구조 개선 약정 위반에 따른 금융제재를 모면했으며, 따라서 삼성은 종합적인 이해득실을 따져본 뒤 자발적으로 합의서를 체결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번 소송의 또다른 쟁점이 됐던 19%의 고리는 과도하다며 삼성의 부담을 덜어줬다. 채권단은 ‘기한 내(2000년12월말)에 삼성생명 주식 처분대금을 지급하지 않을 경우 연19%의 이자를 지급키로 한다’는 약정서 상의 합의를 들어 연리 19%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삼성생명의 주식이 아직 상장되지 않은 것은 100% 삼성측 책임으로 볼 수 없다”며 6%로 조정했다. 채권단은 당사자간 명문 합의를 부인한 재판부 결정에 반발, 항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가 천문학적 액수인 약정금 원금 전액 지급 책임을 인정한데다, 삼성 측이 그동안 연체이자 지급에 반대해 온 점으로 미뤄 항소가 확실시된다.
■ 민사상 최대 규모·대형 로펌 각축장 화제
삼성차 채권환수 소송은 국내 민사소송 사상 최대 규모의 사건이었던 만큼, 결과를 떠나 법정 안팎에서 많은 화제를 낳았다.
이번 재판의 소송가액은 4조7,800여억원. 여기에 소송이 진행된 2년간의 이자까지 더하면 그 액수는 5조원을 훌쩍 넘어선다. 지금까지 소송가액 기준 2위 사건으로 기록된, 대우증권이 대우자동차를 상대로 낸 정리채권 소송의 9,515억원과 비교해도 무려 5배나 많다.
이 때문에 소송 당사자 양측이 법원에 낸 인지대 비용도 182억원에 이른다. 법원이 지급하라고 판결한 약정금 및 지연 이자 2조3,000억원도 국내 법원 판결 사상 최고액수다.
양측의 법정 공방은 국내 법률시장에서 김앤장, 광장의 뒤를 추격하며 3위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대형 로펌들이 맡았다. 서울보증보험 등 채권단 대리인은 태평양과 화우가, 삼성 측 대리인은 세종이 맡았다. 양측 변호인단에는 천경송(화우) 서 성(세종) 전 대법관을 포함, 총 32명의 변호사가 참여했다.
소송에 참여한 로펌들의 수임료는 그 액수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수십억~수백억원대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세종은 단연 국내 1위 기업인 삼성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에서 업계의 부러움을 샀다. 세종은 법원에 소장이 접수되기 이전, 이미 삼성의 의뢰를 받고 소송 준비를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성철 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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