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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남녀 핸드볼 부부 골키퍼 강일구·오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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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남녀 핸드볼 부부 골키퍼 강일구·오영란

입력
2008.01.3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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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면서 뜬금 없는 시샘을 부렸다. 전날 13개의 선방을 해내며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기쁨도 잠시, 다음날 남자부 경기에서는 남편이 17개의 슛을 막아내면서 이날의 히어로로 등극했다. “남편도 같이 잘했는데 기분 좋지 않아요?”라고 묻자 “그래도 제 것도 13개에서 조금 올려주세요”라며 배시시 웃어보인다.

단추 구멍처럼 작은 초승달 눈은 그에게 항상 웃는 얼굴상을 선사했다. 그러나 여자핸드볼 대표팀의 주전 수문장 오영란(36ㆍ벽산건설)이 이처럼 활짝 웃는걸 본건 오랜만이었다. 도핑테스트를 마친 남편 강일구(32ㆍ인천도시개발공사)가 한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아까 넘어진 데 괜찮아? 엉덩이 멍들었지?”(오) “응, 좀 아프네. 그래도 괜찮아.”(강)

30일 일본과의 베이징올림픽 핸드볼 예선 재경기를 모두 승리로 이끌고 인근 호텔에서 한일 양국 핸드볼협회가 마련한 ‘사요나라 파티’(송별회) 현장에서 이들 ‘국가대표 부부’를 만났다. 태극마크가 달린 대표팀 트레이닝복을 똑같이 입고 나란히 앉은 이들은 영락없는 ‘천생연분’이었다.

영원한 라이벌, 영원한 사랑

강일구가 도착하기 전 남편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는 오영란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남편에 대한 애정이 절절이 묻어났다. “저는 대표팀 주전이고 남편은 후보에요. 그것 때문에 남편이 신경을 많이 쓰죠. 제가 나이도 많고 운동도 더 오래 했으니까 자리도 빨리 잡은 것 뿐인데. 그리고 여자들이 국제대회에서 성적이 더 좋으니까 제가 부각된 것 뿐인데. 가끔 ‘오영란의 남편’이라는 말이 나오면 싫은 눈치에요. 사실 임(영철) 감독님은 항상 ‘일구가 훨씬 낫다’고 농담을 하시곤 해요.”

이 말을 듣기라도 한 것일까. 뒤늦게 도착한 강일구는 한 수 위의 칭찬으로 보답을 했다. “합숙에 대회 출전에 거의 만날 시간도 없어요. 보통 여자들 같으면 이해하기 힘들겠죠. 아내는 같은 골키퍼라 그런지 운동에 대해 대화가 잘 통해요. 배려도 잘해주죠.”

속삭이듯 키워온 남몰래 사랑

어린 시절부터 코트에서 자주 만나던 두 사람은 시드니올림픽이 열린 2000년 연애를 시작했고 2년 뒤 결혼했다. 워낙 친한 누나-동생 사이로 지내다 연인이 되고 부부가 됐기 때문일까. 둘은 결혼한 지 6년이 지난 지금도 때로는 아이들처럼 티격태격하기도, 때로는 친구처럼 서로를 보듬기도 한다.

“태릉선수촌에서 한참 가까워졌을 때, 새벽까지 통화를 하다가 제가 그랬어요. ‘이러다 정들면 어떡하냐’고. ‘마음 가는 대로 하자’는 게 결론이었죠. 지금도 제 경기를 일구씨가 봐주면 떨리고 그래요. 어제도 경기 중에 관중석에 있던 남편이 없어져서 후배한테 찾아보라고 시키기까지 했어요.”(오)

“그냥 잘해주는 누나로만 생각했었는데 한 육개월 가깝게 지내다 보니 어느날 갑자기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아무도 모르게 연애를 시작했죠. 성격이 정말 잘 맞는 것 같았어요. 저도 아내가 저의 경기를 보고 있으면 든든하고 기분이 좋아져요.”(강)

소중한 가족, 함께 키워가는 미래

인천 학익동에 있는 그들의 보금자리는 두 달 째 비어 있다. 집보다 태릉선수촌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국가대표 아빠-엄마 덕에 이제 갓 돌을 지난 딸 서희는 할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다. 어느덧 서른 중반에 접어든 이들 부부. 그들이 그리고 있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당장의 목표는 당연히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이죠. 그 뒤에 둘째 아이를 가질 거에요. 베이징올림픽 이후에 둘째를 갖는다고 약속하고 (첫째 출산 이후) 운동을 다시 시작하게 남편이 배려해줬어요. 아이를 낳으면 일찌감치 유럽으로 보내서 핸드볼 영재 교육을 시키려고 했는데 남편은 싫다네요.”(오)

“부모가 모두 국가대표였는데 혹시라도 아이가 부모보다 못하면 혹시 주눅이라도 들지 않을까요?”(강)

“한때 유럽진출의 기회도 있었지만 지금은 서희 곁에 있고 싶어요. 남편도 잘 챙겨줘야 하구요. 요즘 부쩍 감독, 코치 선생님들을 유심히 지켜보게 되는데, 일구씨는 은퇴하면 다른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선생님들의 고충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제 남편이 그렇게 힘든 길을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죠.”(오)

지나가던 임영철 여자대표팀 감독이 “너무 붙어 앉았다. 좀 떨어져!”라고 하자 부부는 수줍은 듯, 그리고 아쉬운 듯 한 뼘의 간격을 뒀다. 그것도 잠시, 부부는 각각 남녀경기의 최우수선수로 호명돼 서둘러 행사장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도쿄=허재원 기자 hooa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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