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A초등학교 교사 김모(32)씨는 30일 학부모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눈 코 뜰 새가 없었다. 김씨는 “학부모들의 질문 모두가 영어 수업에 관한 것이지만 뭐라 해 줄 말이 없어 대화가 겉도길만 했다”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영어수업 시간을 늘리고 교사만 더 뽑는다고 했을 뿐,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적용하겠다는 것인지 밝히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영어수업 시간을 크게 늘리고 2만3,000여명의 영어 전담 교사를 신규 채용하며, 교과 과정을 개편하겠다는 인수위의 영어교육 강화 방안이 공개되자 교직 사회가 큰 혼란에 빠졌다. 인수위가 모든 교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영어 몰입 교육’ 도입 계획을 철회하긴 했지만 불만과 불안감은 여전하다.
교사들은 무엇보다 인수위 방안을 두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한건주의’식 정책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서울 B고교 곽모(38) 교사는 “인수위는 교육 정책을 뿌리째 흔들 변화를 가져오겠다면서 사전에 교사, 학부모, 학생들의 목소리는 전혀 듣지 않았다”며 “아무리 이상적인 정책이라 해도 현실과 동떨어져서는 쓸모가 없으며, 영어 몰입 교육 철회가 그 증거”라고 주장했다.
서울 C중학교 윤모(43) 교사는 “영어 수업 시간을 늘리면 다른 교과는 어떻게 할 것인지, 교과 과정 개편은 어느 정도 이뤄질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함께 밝혀야 하는 것 아니냐”며 “개학을 했지만 어수선해서 다들 일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명박 정부’가 지나치게 실용성만을 강조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많았다. 서울 D고교 최모(34) 교사는 “영어 전용 교사(EET), 영어전용 보조교사 등 영어 실력과 자격증만 있으면 별다른 검증 없이 무조건 교사로 쓰겠다는 발상은 오직 영어 회화 능력만 키우기 위한 사교육 현장을 학교로 옮기는 것과 다를 게 뭐냐”고 목청을 높였다.
경기 E고교 박모(52) 교사는 “학생들을 바른 사람으로 키우는 인성 교육도 학교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라면서 “영어 실력만 키우겠다며 실용 교육만 강조하면 사람 교육은 어떻게 되느냐”고 반문했다.
서울 한 고교의 국어 교사는 “영어 교사들은 어디다 하소연도 못하고 있다”면서 “영어 교사들이야 영어 실력 키우려고 기를 쓰고 하겠지만 기존의 학교 행정 업무를 다 하면서 얼마나 집중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교사는 “교과 과정 전면 개편이나 교사 실력 향상이야 좋은 이야기지만 기본적으로 잡무를 줄이는 행정 개편이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