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이른바 '영어 몰입교육' 구상을 철회했다. 이경숙 위원장의 "그럴 수 있다"는 언급에서 시작돼 이주호 사회교육문화분과위 간사의 "영어 몰입교육 검토 및 농어촌 학교 시범실시" 발언을 거치며 증폭된 논란과 비난여론에 떠밀린 결과다. 인수위 핵심 인사들의 언명이 1주일도 안 돼 '없던 일'로 되었으니, 인수위가 보여온 우왕좌왕의 대표적 예라 할 만하다.
지난 한 달여 동안 인수위는 갈팡질팡했다. 휴대전화 요금을 내리도록 하겠다더니 시장자율에 어긋난다는 지적에 물러났고, 유류세 인하에 강한 의욕을 표하더니 이내 흐지부지해졌다. 2013학년도 대입 수능시험에서 영어를 빼고, 한국형 영어인증시험으로 대체한다던 구상도 2015년으로 시기를 늦췄다.
섣부른 정책구상을 공개했다가 번복하게 된 구체적 이유는 사안마다 다를 수 있다. 언론의 취재 의욕 과잉, 인수위원들의 공명심, 분과위 사이의 경쟁의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인수위가 자기 역할과 직무에 대해 집단적 착오에 빠져 스스로를 정책입안 기구로 착각한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닌지 걱정스럽다. 대통령직인수법 어디에도 인수위가 지금처럼 온갖 정책을 쏟아낼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인수위의 임무는 국정이 중단 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 조직과 기능 및 예산현황을 파악하고, 대통령 취임행사 등을 준비하는 것이다.
정책과 연관시킬 규정이라고는 '새 정부의 정책기조를 설정하기 위한 준비'가 고작이다. 그러니 인수위의 역할은 당선인의 공약을 관통하는 정책기조가 현실정합성을 띠는 데 필요한 선결과제를 점검하고, 현실에 맞춰 정책기조의 수정을 모색하는 정도에 그친다. 구체적 정책 입안은 새 정부와 여당이 맡아서 할 일이다.
사실 '영어 몰입교육'은 영어 과목 이외에도 영어로 수업하는 과목의 비중을 높이겠다는 이명박 당선인의 공약에서 나왔다. 따라서 인수위는 교육현장에 그런 기반이 얼마나 갖춰져 있는지, 제대로 갖추려면 어느 정도의 투자와 시간이 필요한지 등을 점검하면 그만이었다. 이번 실패의 경험을 살려 인수위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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