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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한민국과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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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한민국과 영어

입력
2008.01.29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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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이른바 영어몰입교육을 실시할 계획이 없다고 발표했다. 영어를 영어로 가르치고 영어 이외 과목도 영어로 가르치겠다며 논란을 일으켜놓고 슬쩍 빠진 것이다. 그 사이에 신문은 익지 않은 기사를 내놓아 혼란을 부채질했다.

영어몰입교육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우리 생활이 영어와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영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점검하고 영어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살피는 것도 필요하다.

다들 공감하듯 학교 생활과 대학 입시, 취업, 가족 관계까지 우리 생활에 영어가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영어 점수 잘 받겠다고 들이는 노력과 시간과 돈은 상상을 초월한다.

거기에 영어 유치원, 어학 연수, 토플 토익 응시자 규모, 영어로 진행되는 기업체 중역회의와 공무원 회의까지, 영어에 대한 우리 사회의 투자는 지나치게 많다.

영어가 글로벌 언어이기 때문이라면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나라도 대한민국처럼 이렇지는 않다. 그러니 우리나라가 영어에 미쳤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영어에 집착하는 이유는, 영어 잘하면 좋은 대학 가고 좋은 대학 나오면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영어를 돈벌이, 출세와 연결하기 때문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영어몰입교육 소식이 전해진 뒤 학부모들이 당장 아이들 외국 보내거나 영어전문학원 보내겠다고 마음 먹은 것도 그 때문이다. 제 자식이 가장 똑똑하다고 확신하거나 내 자식은 어떤 일이 있어도 경쟁에서 밀려서는 안된다고 믿는 학부모들이다.

그러니 설사 좋은 취지로 영어를 이야기해도 학부모들은 점수와 입시를 먼저 생각한다. 나비의 단순한 날갯짓이 날씨를 바꾼다는 나비효과처럼, 영어에 대한 섣부른 언급이 큰 사회적 파장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한다면 나라를 이끌고 교육정책을 펴겠다는 사람들은, 영어 계획을 발표하기에 앞서 영어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욕망과 수요를 냉정하게 점검하고 그것이 과다하다고 판단되면 가라앉혀야 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영어 학습에 어느 정도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가는지를 살피고 그 효과가 어떤 지를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그래서 거품이 있다면 제거해야 한다.

거품을 계량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 서툰 어린 아이부터 기업체의 중역에 이르기까지 영어에 미친 듯 매달리는 이 현실을 보면 거품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외국인과 빈번하게 접촉하고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사람이 아직은 소수이다. 물론 미래의 수요는 지금보다 크게 늘어날 것이지만, 현재 영어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과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비교하면 너무나 불균형적이다.

국정을 이끌겠다는 사람들이 할 일은 영어가 절실한 사람에게는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가르쳐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 영어 불안감을 주지 않는 것이다.

대신 그들은 영어가 신분을 가르고 빈부를 가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영어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우월한 지위를 가져서는 안된다. 박노자 교수는 이미 영어 능통자를 한국 주류 사회의 귀족으로 규정한 바 있다. 박노자와 세상 보는 눈이 반대인 이명박 당선인도 세계화 시대에는 영어 실력이 빈부를 가를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박광희ㆍ피플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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