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월 서울 목동에 음식점을 연 김모(55)씨는 자신도 모르게 연체자가 됐다. 국민은행에서 변동금리(연 6.25%)로 1억원을 빌려 상가 보증금을 낸 뒤 매달 52만~53만원의 이자를 꼬박꼬박 내왔다.
그런데 지난해 9월 담당 직원에게서 이자가 연체됐다는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그 새 금리가 치솟아 갚아야 할 이자가 늘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같은 액수만 통장에 다달이 입금했던 것이다.
김씨는 "은행에서 이자가 얼마 오른다는 간단한 통보만 해줬어도 연체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장사도 안 되는데 연체자로 찍혀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최근 이자 하락의 혜택도 누리지 못하는 이중고를 당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 이모(66) 할머니는 "은행이 사채업자"라고 성토한다. 노후 대비 차원으로 외환은행에서 아파트를 담보로 2억원(금리 5.25%)을 빌려 오피스텔 2실을 구입한 이 할머니는 월세를 받아 은행 빚을 갚아왔다.
행여라도 연체가 될까 봐 원래 이자 금액보다 넉넉히 넣었다. 그러나 이 할머니 역시 지난해 금리 급등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지난해 11월 이자 연체를 이유로 원금 상환압박을 받은 이 할머니는 "대출을 해줄 때는 서로 찾아와 우대금리를 주겠다고 홀리더니, 막상 돈을 빌려준 뒤엔 알아서 내라는 식"이라며 "변동금리의 위험성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수억 원을 빌려주는 은행이 사채업자와 다를 바가 뭐냐"고 불평했다.
은행의 대출 사후관리가 엉망이다. 말로는 각자 서비스 1등 은행이라고 떠들지만, 실제 서비스 수준은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뺨친다. 변동금리로 대출을 받은 고객이 조금만 방심하면 연체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금리나 경제환경 변화에 둔감한 나이 많은 어르신이나 사업으로 바쁜 자영업자들은 은행의 무성의한 고객 관리가 서운하기만 하다.
물론 은행들이 손만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금융감독원은 2006년 말 금리 변동에 따른 위험이 커지자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에 한해 달라지는 적용 금리를 통장이나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고지하도록 은행들에 개선을 요구했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대부분 은행은 이를 적용하고 있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자를 대상으로 '이자 납입기일 사전통지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인터넷뱅킹에서 납입기일, 이자율 조회가 가능하고, 통지를 원하는 고객에겐 문자메시지나 이메일을 통해 납입기일과 금리수준도 알려준다.
문제는 인터넷뱅킹을 사용하지 않는 고객에겐 인터넷 방식이 무용지물이고, 제도가 시행되기 전 대출 고객은 은행에서 알려주지 않아 이런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는 점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통지를 싫어하는 고객도 있어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에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자에게 문자메시지와 이메일로 납입기일을, 대출금거래장(대출통장)에 찍히는 방식으로 금리수준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통장관리를 잘 하지 않는 이들에겐 불편한 방법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도 잘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정례적으로 실태조사를 통해 점검하고 있지만 여전히 민원이 많이 발생한다"며 "은행 규모가 방대해 전 영업점을 조사할 수 없고, 신입 직원들은 잘 모르는 경우도 있어 어려움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변동금리 관련 대출의 사후관리는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통상 지점의 개인대출 규모가 200억~300억원이라고 한다면 고객 수는 200~300명이 넘는데, 너무 수가 많고 대출 조건도 다양해 사실상 관리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고객들의 요구사항은 단순하다. 회사원 김모(35)씨는 "잡다한 광고 메시지 대신 최소한 '고객님의 이자가 오를 수도 있으니 확인해 보라'는 정보만 보내줘도 대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서비스 경쟁력을 내세우고 있는 은행들이 곰곰이 고려하고 실천해야 할 아이디어"라고 평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