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이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지난해 6월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32년 만에 명예졸업장을 받고 행한 강연이었다.
당시 그는 "인간성의 가장 위대한 진보는 (학문적) 발견을 어떻게 불평등을 해소하도록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우리가 좀더 창조적 자본주의를 발전시킨다면 시장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역할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열린 38회 세계경제포럼(WEF), 즉 다보스포럼에서 '21세기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주제로 연설하면서 다시 이 말을 끄집어냈다.
부자를 위해 움직여온 자본주의의 여러 작동장치가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창조적 자본주의이고 아담 스미스도 이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는 "우리가 21세기 초반 10~20년을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데 쓴다면 지구 상의 가난은 현격히 감소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 자본주의 두 얼굴, 비판과 반성
미국 발 비우량주택 담보 대출 부실이 초래한 세계 경제의 침체위기 속에서 열린 올해 다보스포럼의 공식 주제는 '협력적 혁신의 힘'이었지만 모든 참석자들이 들고 다닌 화두는 '불확실성'이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쉴 새 없이 낙관적 전망을 늘어놓았던 세계의 정ㆍ관ㆍ재ㆍ학계 리더들은 월가의 첨단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취약성에 몸을 떨며 고삐 풀린 금융시스템의 위험을 경고했다.
올해 특히 주목되는 것은 그 동안 복음처럼 여겨왔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거센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는 점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세계화가 지구적 성장률을 높였을지는 몰라도 인간의 삶의 질은 오히려 저하된 만큼, 세계화가 '윈-윈 게임'이라고 가르쳐온 경제학 이론은 폐기돼야 한다는 것이다.
'부자들의 고급 사교장'으로 불려온 다보스포럼에서 이 같은 얘기가 나오고, 빌 게이츠가 자본주의의 새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세계의 정치경제적 지형이 또 한번의 전환점을 맞고있음을 보여준다.
이 포럼에 대통령직 인수위의 사공일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위원장이 이명박 당선인의 특사로 파견돼 '새 리더십 하의 한국, 또 다른 경제기적 만들기'를 주제로 연설했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도 지난 10년간 낡은 리더십에 발목 잡혀 국가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이 추락했지만, 기업친화적인 새 정부에서 경제적 효율성을 극대화함으로써 10년 내에 1인당 소득 4만 달러와 함께 G7(선진 7개국)의 새 멤버가 되겠다는 내용이다.
규제ㆍ세제 개혁 및 정책투명성 약속과 함께 적극적 한국 투자를 요청한 야심찬 이 청사진에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을 법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고개를 갸웃했을 것 같기도 하다.
신자유주의로 표현되는 세계적 자본축적 과정의 부작용이 자본주의 체제의 효율성을 위협하고, 빈곤과 불평등 등 세계화가 초래한 지구적 문제가 뜨거운 현안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별다른 고민 없이 덜렁 G7을 목표로 언급한 것은 뭔가 어색하고 어쭙잖게 들린다.
'잃어버린 10년'의 깊은 골을 메우기 위해 다소의 무리가 있더라도 규제를 과감히 칼질하고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쪽에 모든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시대적 흐름과 적절히 어울려야 하고, 그 내용은 진정한 의미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신을 담아야 한다. 정부와 기업, 사용자와 근로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도권과 지방 등 이해 당사자들이 서로 납득하는 새로운 게임의 규율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 MB정부, 전환기적 과제 넘어야
올해 다보스포럼의 성과에 대한 평가는 결코 좋지 않다. 문제는 많고 말은 풍성했으나 자본주의의 두 얼굴을 관리하고 통제할 방책을 찾지 못한 까닭이다.
20여일 후 공식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도 다보스의 축소판 같은 고민을 안게 될 것이다. 이 당선인의 신년휘호인 '시화연풍(時和年豊ㆍ나라가 태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든다)'의 꿈은 이미 시험대에 올랐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