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53)씨는 2년 동안 한 달에 70만원씩 넣어온 적금을 2월 중순 타게 되면 정기 예금으로 바꿔 탈 계획이었다. 1,700만원이 넘는 돈을 펀드에 넣을까도 생각했지만, 주식시장이 좋지 않은 데다 은행들이 고금리를 내건 특판 예금을 팔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씨는 "최근 몇 주 새 예금 금리가 크게 낮아져 다른 재테크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2월 결혼을 앞둔 황모(32)씨는 신혼집 마련을 위한 대출 상담을 받으려 은행을 찾았다. 담당 직원은 황씨에게 "최근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떨어지고 있으니 조금 기다려보는 게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당장 신혼 살림을 집에 들여놓아야 하는 황씨 입장에선 금리 하락을 마냥 기다리기만 힘든 상황이다. 황씨는 "요즘 시장 금리가 크게 떨어졌다는데,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왜 이렇게 안 떨어지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1월 중순을 기점으로 은행의 자금 사정이 좋아지면서 주택담보대출, 예금 등의 금리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은행들은 수입원인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찔끔 내리는 반면, 비용에 해당하는 예금 금리는 큰 폭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금리가 떨어지는 틈을 타 남는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이날부터 '고단위플러스 정기예금' 최고 금리를 1년 만기 기준 연 5.9%로 하향 조정했다. 연초 특판 예금 금리가 6.62%였던 것을 감안하면, 한 달도 채 안돼 0.72%포인트가 내려간 것이다.
신한은행도 24일부터 연초 특판 때보다 0.7%포인트 낮은 6.0%짜리 예금을 팔고 있고, 기업은행은 25일부터 0.51%포인트 낮은 예금을 선보였다. 국민은행은 이번 달까지 연 6.5%를 주는 판매 행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다음달부터 큰 폭으로 금리를 내릴 계획이다.
반면, 소비자들이 은행에 지급해야 하는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소폭 하락에 그치고 있다. 가장 많이 내린 하나은행의 경우 연중 최고치 대비 0.13%포인트 낮아졌을 뿐이고, 국민ㆍ우리ㆍ신한ㆍ기업은행은 고작 0.1%포인트 내렸다.
이처럼 대출과 예금 금리 하락폭에 차이가 나는 것은 은행들의 금리 조정 재량이 대출과 예금에서 다르기 때문이다. 예금 금리의 경우 국고채, CD 등 시장 금리를 감안, 각 은행의 판단에 따라 조정이 가능하다.
반면,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91일 만기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라는 공통 금리를 기준으로 삼는다. 즉, 은행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금리 조정의 재량을 한껏 살릴 수 있는 예금 금리만 크게 낮춘 셈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더 낮추고 싶어도 CD 금리에 연동돼 있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은행의 이런 차별적 금리 인하는 수익성 악화 때문이기도 하다. 금융연구원 한재준 연구위원은 "지난해 은행의 자금조달 비용이 크게 늘어났지만, 이를 상쇄해줄 대출 금리는 비용 증가분만큼 오르지 못했다"며 "이 탓에 은행 경영진이 예전 수준을 회복하기 위해 조달 비용인 정기 예금 금리를 낮추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금융계 관계자는 "은행은 금리 조정 등으로 소비자들에게 경영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예대 마진 외에 또 다른 수익원을 찾는 노력을 우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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