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당선인은 영어 교육을 ‘국가적 사명’으로 삼은 듯 하다. 그는 “고교만 나와도 거침 없는 생활 영어를 할 수 있게 한다”(25일)는 ‘통 큰’ 구상을 하고 있다. 이에 맞춰 대통령직 인수위가 발표한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가 논란을 일으키자 이 당선인이 직접 교육계 인사들을 만나 설득하기도 했다.
이 당선인은 “우리나라 영어 교육은 죽은 교육”이라고 믿고 있다고 한다. 몇 가지 계기가 있었다. 이 당선인의 영어는 현대그룹에 있을 때 해외 사업 현장에서 독하게 익힌 ‘생존 영어’다. 발음과 문법엔 가끔 실수가 있지만 일상적 대화가 가능하다.
한 측근은 “당시 명문 대학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따고 학점도 좋다는 똑똑한 사람들이 현장에서 이 당선인보다 영어를 못하는 것을 보고 혀를 찬 적이 많다고 한다”면서 “또 동남아에서는 고교만 나와도 영어를 잘 하는데 이 당선인의 자녀들은 10년 넘게 영어를 배워도 말문이 터지지 않는 이유가 기형적 교육 시스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전 국민의 영어 프리토킹 시대’ 구상은 이 당선인의 외국 투자 유치 확대 계획과도 관련이 있다. 이 당선인은 세계화 시대에 맞는 영어 교육을 강조하면서 종종 “외국 기업의 아시아지역본부를 서울로 유치하려 했더니 가장 큰 문제가 일반 시민이 영어가 안 된다는 것이라 하더라”는 사례를 든다. 이 당선인은 서울시장 시절 영어 공용화를 염두에 두고 시 공문서를 한글과 영어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했다가 한글학회 등의 반대가 심해 포기하기도 했다.
이 당선인의 영어 교육 드라이브는 ‘가난의 대물림을 끊는 교육 복지 차원’이기도 하다. 인수위 핵심 관계자는 “이 당선인이 걱정하는 것은 아이들을 외국에 보낼 능력이 있는 기러기 아빠들이나 조기 유학 때문에 빠져 나가는 막대한 외화가 아니다”면서 “영어 실력이 빈부를 가르게 될 세계화 시대를 앞두고 영어 사교육비 때문에 고통받는 서민이 새 영어 교육 정책의 진짜 타깃”이라고 말했다. 이 당선인은 지난해 6월 언론인터뷰에서 “가난한 집 아이의 교육은 소모적 복지가 아닌 투자의 개념이다. 고품질 공교육으로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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