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영광굴비는 기름 안 먹었응게, 싸게들 먹드라고!”
서울서 차로 3시간30분을 달려 찾아간 전남 영광군 법성포. 영광굴비의 산지인 이곳에서만 16년간 조기잡이와 굴비 가공업을 해왔다는 박정우(48)씨는 점심상을 두고 머뭇거리는 취재진을 채근했다.
하지만 ‘밥도둑’이라는 영광굴비를 앞두고 머뭇거릴 만한 이유는 있었다. 작년 12월 충남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로 타르 덩어리가 전남 서해안 지역으로까지 유입되면서, 영광도 지난 18일 인근 무안, 신안과 함께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박씨는 “이곳도 가까운 연안이나 갯벌 지역 어민들은 피해가 상당하다”면서 “그러나 특산물인 굴비의 경우 더 이상 연안에서 잡지 않기 때문에 기름 피해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원래 영광굴비가 유명한 이유는 산란기를 앞두고 북으로 이동하는 조기가 법성포 앞 칠산바다에서 많이 잡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류 변화 등으로 칠산바다에서 조기가 사라진 지가 이미 10여년이나 됐다고 한다.
박씨는 “요즘엔 법성포에서 출항해 3일 밤낮을 달려 제주 남서쪽 공해상까지 가야만 조기를 만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요즘 법성포에서는 조기를 가공만 하기 때문에 기름유출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점심을 먹은 후 들른 이경섭(46)씨의 작업공장에는 10여명의 직원들이 염장이 끝난 조기를 엮고 있었다.
그런데 이씨는 “영광굴비도 태안 기름유출 사고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조기 염장에 쓰이는 소금 생산이 줄어들어 가격이 폭등했다는 것이다.
바다에서 잡은 조기는 ‘염장’과 ‘건조’ 과정을 거쳐 ‘굴비’가 된다. 영광굴비는 특이한 염장기법으로도 유명하다.
소금물에 생선을 염장하는 타 지역과 달리, 이곳 어민들은 전통방식대로 소금을 직접 뿌려 생선의 선도를 높인다. 생선의 크기에 따라 염장기간을 달리 하는 것도 이 지역만의 비법이다.
이때 사용하는 소금은 바닷물을 증발시켜 만든 천일염. 이씨는 “기름유출 사고로 인근 염전의 천일염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가격이 세배 가까이 치솟았다”며 “그렇다고 굴비 가격을 무턱대고 올릴 수도 없어 걱정”이라고 털어놓았다.
방법이 없지는 않다. 바로 친환경 프리미엄 굴비의 생산이다. 최근 법성포에서는 천일염 대신 송화가루를 코팅한 소금이나 황토에서 구운 소금, 또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바닷물을 끓여서 만든 자염(煮鹽) 등을 쓰는 집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 소금의 가격은 천일염에 비해 10~30배까지 비싸지만, 친환경 이미지 덕분에 조기 가격을 올렸어도 소비자들의 인기가 여전하다고 한다.
이씨는 “가격은 다소 올랐지만, 몸에는 그만큼 더 좋은 고급 굴비인 탓에 고객들의 반응이 좋다”고 설명했다.
그간 굴비를 엮을 때 주로 사용해 굴비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노란 엮걸이 끈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약 20년 전부터 짚 대신 사용하기 시작한 노란 끈은 석유화학제품인 탓에 통풍이 잘 안되고 발효과정에서 끈의 유해 성분이 굴비에 스며들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지만 롯데백화점에 납품하는 법성포 굴비업체들은 올해부터 옥수수 녹말로 만든 친환경 끈을 사용한다.
천연재료여서 인체 유해물질이 나오지 않고 매립 때 자연 분해되는 장점이 있다.
소비자에게 안전성에 대한 믿음을 줘야 한다는 공감대도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이씨의 공장에서 굴비를 엮고 있던 주연래(50ㆍ여)씨는 “엮걸이 끈이 새로 바뀐 데다 한 두름을 마무리할 때마다 원산지 표시줄을 묶으라고 해서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린다”면서도 “필요한 일이니까 빨리 손에 익혀야지”라며 엮는 속도를 더했다.
법성포 굴비업체들은 해양수산부, 롯데백화점과 함께 2월부터 수산물 이력시스템을 도입한다.
원산지에서부터 소비자 식탁까지 전 유통 과정을 제품에 붙은 바코드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롯데백화점 수산담당 임준환 과장은 “바지락, 조개, 골뱅이 등 패류는 대부분 기름유출 사고와 무관한 남해에서 생산되는데도 불구, 소비자의 우려 때문에 매출이 15% 가량 감소했다”면서 “영광굴비처럼 수산물 이력제 등을 통해 안전성을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 어민들의 추가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영광 법성포= 문준모기자 moonjm@hk.co.kr심혜이 인턴기자(중앙대 정치외교학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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