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노 프로디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 중도좌파 내각이 출범 20개월 만에 무너졌다.
이탈리아 상원은 24일 프로디 정부에 대한 신임투표를 실시해 지지 156표, 반대 161표, 기권 1표로 불신임을 의결했다. 상원의원 한명 한명에게 찬반을 물은 이날 표결에서 의원들은 서로 삿대질을 하고 침을 튀기며 고함을 지른 것은 물론 “배신자” 등 막말을 하며 이탈리아 의회의 낯익은 장면을 재연출했다.
프로디 총리는 표결직후 조르조 나폴리타노 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했고, ‘전진 이탈리아당’을 이끄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대통령에게 아직 임기가 3년이상 남은 의회를 해산하고 4월 조기 총선을 실시할 것을 촉구했다.
프로디 정부의 몰락은 일차적으로 연정 파트너였던 군소정당인 기독민주당이 최근 연립내각에서 이탈한 데서 비롯됐다. 이 당을 이끄는 클레멘테 마스텔라 전 법무장관은 정부가 자신과 부인에 대해 직권남용 혐의로 조사를 시작하자 연립내각을 이탈했고, 근소한 차로 과반 의석을 유지하던 연정이 위험에 처하자 프로디 총리가 상ㆍ하 양원에 내각 신임투표를 붙였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야권 연합은 현 정부의 실정을 부각하며 공격을 계속해 왔다. 연초 스페인이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 이탈리아를 제쳤다는 뉴스와 나폴리의 쓰레기 대란도 정부의 무능을 각인시켰다.
이탈리아의 정국이 늘 불안한 근본 원인은 이탈리아 현대 정치사를 관통해 온 뿌리깊은 지역주의와 계파주의, 파시즘과 바티칸의 영향력, 왜곡된 선거 제도 등 독특한 역사적, 정치적 문화에 있다. 좌우 양대 정당을 중심으로 안정적으로 내각이 유지되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이탈리아에서는 한 내각의 평균 지속 기간이 1년도 안 된다. 프로디 정부도 2차대전후 들어선 61번째 내각이었다.
1992년 부패 고위 공직자와 의원들을 추방한 ‘깨끗한 손’ 사건 후 기독민주당과 공산당이라는 양대 정당이 수많은 군소 정당으로 분열됐고, 계파와 지역 중심 의회 구성 방식 때문에 여ㆍ야당 어느쪽도 압도적 과반확보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
특히 2005년 총선 직전 베를루스코니 정부가 도입한 선거 제도는 상원 의석을 지역 기준으로 배분하고 계파 정치인에게 더 많은 의석을 배분, 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당시 프로디의 중도좌파가 승리했지만 상원 의석의 상당수를 지역과 군소정당에 배분, 한 자릿수 차이의 아슬아슬한 연정을 구성했다. 결국 아프가니스탄 평화유지군 주둔 문제를 비롯, 수많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상원 부결후 내각 신임투표로 돌파’하는 사태가 반복됐다.
바티칸 영향력도 한몫 했다. 1920년대 파시스트 정부를 지지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한 바티칸은 이후 동성애, 낙태 등 좌파 정당의 진보적 개혁 움직임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특히 프로디 정부는 동성 커플에 대해 합법적 지위를 부여하려는 정책을 공약해 바티칸의 분노를 샀고, 연정 내 친 바티칸 성향 정당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