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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새대통령, 취임식서 한복 입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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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새대통령, 취임식서 한복 입으면 어떨까

입력
2008.01.2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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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엔 기모노가 있고, 베트남엔 아오자이가 있으며 인도엔 사리, 중국엔 치파오가 있다. 그럼 한국엔? 물론 한복이 있다. 그러나 각국의 전통의상에서 영감을 얻은 다양한 에스닉 패션 붐이 일고 있는 세계 패션계에서 한복의 존재감은 유감스럽지만 전무하다.

2007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크리스찬 디올이 기모노 스타일을 차용하고 마크 보이어가 아오자이를 서구의 시선으로 재해석했으며, 2008 봄여름 컬렉션에서 에르메스는 인도의 사리를, 요지 야마모토는 중국의 치파오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

스타일닷컴이 2008년 유행의 키워드로 ‘동북아 패션’을 꼽는 시대이지만, 한복에 주목하는 디자이너를 찾기 힘든 이유는 뭔가. 한복전문지 <한복의 멋> 편집장 김영선씨는 “전통복식의 생활화, 세계화에는 리더 계층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국가 이미지를 대표하는 대통령 내외가 공식석상에 자주 한복 차림으로 등장해 우리 전통복식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복업계의 시선이 2월 25일 열리는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에 쏠리는 이유다.

한국한복공업협동조합(이사장 원혜은)은 1월 말 ‘의전한복 자문위원단 위촉 제안서’(가칭)를 박범훈 대통령 취임식 준비위원회 위원장에게 공식 제출한다. 취임식에 새 대통령 내외가 한복 차림으로 참석할 것을 요청하는 한편, 국내외 중요 행사에 대통령 내외가 입는 한복은 패션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전통문화산업을 육성하고 해외에 알리는 기회라는 점에서 전문적인 식견을 갖춘 자문단을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긴다.

“박 위원장이 국악인 출신으로 전통문화에 조예가 깊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한다”는 원혜은 이사장은 “적어도 대통령 내외분의 한복 차림에 대해서는 ‘어떤 디자이너가 영부인 한복을 지었다더라’는 차원은 이젠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복은 옷이면서 동시에 자랑스러운 전통문화이자 산업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대통령 내외분이 한복을 입는 모습이 자주 노출될수록 대중의 한복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고, 해외에서도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어요.”

조합이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은 일본 문화를 전세계에 알리는 강력한 아이콘이 된 기모노 산업이다. 일본은 왕실이 앞장서서 기모노 문화를 알리는 데 이바지한다.

일본 왕실에서 혼인이 있거나 중요한 대외행사가 있을 때는 개별 디자이너가 아니라 사단법인 일본기모노진흥회가 이끄는 의전팀이 엄선한 기모노를 최고의 예법에 맞춰 착용시킨다. 일본의 기모노는 장도예법(裝道禮法)이라는 절차에 따라 입는데 이를 입혀주는 사람이 따로 있을 만큼 철저한 양식화에 성공했다.

김영선씨는 “한복이 불편하다지만 걷기도 힘들 만큼 좁은 치마폭에 게다까지 끌고 다녀야 하는 기모노에 비할 바가 못된다. 그래도 일본에서는 매년 성인식에 참가하는 청소년의 80% 이상이 기모노를 입고 그 옷차림 그대로 춤추러 간다. 불편한 옷을 입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노는 문화는 결국 사회의 리더 그룹이 솔선수범해 자기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역대 영부인들은 해외 순방시 한복을 입으면 ‘카메라 세례를 더 받는다’ ‘정상들이 관심을 가지고 말도 걸고 한복을 만져보기도 한다’고 회고했다. 한복이 해외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 퍽 좋은 소재일 뿐 아니라, 원활한 외교를 위한 유화제 구실도 톡톡히 해낼 수 있음을 암시한다. 한복디자이너 박술녀씨는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지난해 사상 처음 삼팔선을 걸어서 넘어 북한을 방문했을 때, 한복을 입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너무 아쉬웠다”고 말했다.

“해외 언론의 시선이 집중되는 장면인데 그때 삼팔선에 걸친 그 발 모습이 구두가 아니고 한복 아래 맵시있게 드러난 태사혜였으면 얼마나 더 관심을 끌었겠어요.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는 참 좋은 기회였는데….”

인천시의회는 지난해 말 ‘한복 착용 장려를 위한 지원 등에 관한 조례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올해 3월부터 특별한 날과 상관없이 전통한복(개량한복 제외)을 입은 사람은 인천시립미술관 인천도호부청사 등 문화시설이나 유적을 입장할 때 요금을 감면해주는 내용이다.

사이버 세상에서는 ‘한복을 사랑하는 모임’ 등 우리 것을 지키고 즐기자는 취지를 갖춘 한복사랑 동호회 등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한복협동조합은 한 벌에 적게는 3,000만원, 많게는 1억원에 이르는 고가의 기모노가 일본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가 대여시장이 활성화돼있기 때문이라는 점에 착안, 고가 한복 대여시장을 확대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원혜은 이사장은 “대선 전 한 조사에서 김윤옥 대통령 당선인 부인이 ‘가장 한복이 어울릴 것 같은 후보 부인’ 1위를 차지했던 것이 기억난다”며 “신임 대통령 내외분이 자주 한복 차림을 선보여 ‘한복은 불편하다’에서 ‘한복이니까 불편해도 좋다’로 인식을 바꾸는 전기를 마련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새대통령 내외에 어울리는 한복은…

대통령 취임식은 한 나라의 앞날을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승계하는 자리다. 엄숙하고 경건하되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으로 충만해야 한다. 박술녀씨는 "격식을 차려 입는 한복은 두루마기까지 입는 것이 기본이고 가능한 자수나 장식을 배제하고 수수한 단색으로 가되, 색의 조화를 중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원혜은씨는 "예로부터 임금을 상징하는 색상이 황색이기는 하나 중국의 영향이 느껴지고, 권력지향적인 이미지가 강한 것이 단점"이라면서 "오히려 민중과 함께 하는 오늘날의 대통령은 화합과 편안한 기운을 상징하는 푸른 계열이 알맞다"고 조언하면서 가장 겉에 입는 두루마기에 물빛 푸른 계열을 사용할 것을 추천했다.

푸른색은 실용주의 노선과 어울리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데다 한나라당의 당색이기도 해 일석이조의 효과라고. 동정은 다소 두툼하게 쳐서 목선을 많이 드러내지 않는 것이 정갈하다.

김윤옥 여사를 위해서는 붉은색이 도는 분홍색 두루마기나 저고리를 추천했다. 박씨는 "푸른 기운과 붉은 기운이 화합을 이루는 조화로운 느낌, 덕이 있어 보이는 얼굴형을 잘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방한용으로 쓰는 목도리는 예법에 어긋나므로 취임식 자리에서는 피해야 한다.

김영선 편집장은 "취임식에서는 소박하되 격조있는 차림이 요구되지만, 해외 정상들과의 만남 등 좀더 화려한 옷차림이 가능한 자리에서는 전통 궁중 복식인 당의나 배자에 뒤꽂이나 가락지 등 액세서리를 곁들이는 등, 한복의 멋스러움을 한껏 자랑할 수 있는 품목들을 다채롭게 선보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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