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경기에는 조정경기와 요트경기가 있다 준비하기 쉽고 강에서 빠른 속도로 단거리를 가는 데에는 조정에서처럼 노를 사용한 보트가 유리한 것 같고 준비하는 데에는 더디고 출발할 때는 느리지만, 바다에서 먼 거리를 가는 데에는 돛을 사용한 요트가 더 적절한 것 같다.
한국의 정보기술(IT)이나 로보틱스 분야의 교육과 연구개발 움직임을 보고 있자면 우리나라는 가까운 미래 경쟁을 위해 조정경기용 보트 만들기와 노젓기 훈련 등 초기 속도전 위주라는 느낌이다.
준비에는 귀찮고 시간이 걸리지만 결국은 더 너른 바다에서 국제적 경쟁력을 가지고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요트식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단적인 예가 IT의 한 핵심분야인 인간-컴퓨터-상호작용(HCI) 분야나 로보틱스 분야다. HCI의 핵심은 인공물인 컴퓨터나 다른 디지털 기기와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하는가를 밝히고, 이를 통해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디자인에 인간의 정보처리, 감성적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당연히 인간의 인지적, 감성적 정보처리 특성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연결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국내 이공계 대학의 관련 학과 학생들의 교과과정이나 실험실의 활동을 살펴보면 인간의 인지적, 감성적 정보처리 특성을 배우고 연구할 환경은 전혀 조성되어 있지 않다. 돛 단 요트가 아닌 노젓기 중심인 것이다.
로보틱스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의 국내 로보틱스 교육과 연구는 인간처럼은 못하더라도 동물처럼 움직이는 로봇 만들기가 중심이다.
그러나 미래에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로보틱스 연구가 되려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어린아이가 태어난 이후 자라면서 계속 발달하듯이, 로봇이 스스로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새 지식을 쌓고 인간처럼 사고하고, 다른 인간ㆍ로봇과 협동하며, 언어를 이해하며, 인간과 같은 감성적 반응을 보여 적응할 수 있는 그러한 로봇을 만들어야 한다 로봇 연구에 인간 발달특성 인간 인지특성 인간 감성특성 등의 인지과학 지식이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 대학에서 로봇연구를 하는 학생들을 보면 인간에 대한 전문적 지식은 전혀 없는 상태로 졸업해 로보틱스 연구 현장에 투입된다.
인간의 발달적, 인지적, 정서적, 행동적 특성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이들이 우리나라 성장동력 산업의 하나인 로보틱스의 미래 연구개발을 담당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답답한 느낌이 든다.
물론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후에 필요하면 그때 가서 공부하면 되지 않는가, 그때에 인지과학, 심리학 전문가를 채용하여 쓰면 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조정경기용 보트에 후에 필요하면 돛을 달거나 돛 전문가를 투입하면 되지 않는가 하는 것과 같은 생각이다.
융합과학기술 연구개발의 실제 역동을 모르는 탁상공론적 생각이다. 이미 노 젓는 것에 익숙해지고 생각이 굳은 이후에는 돛을 단 융합적, 학제적 사고를 하기는 매우 힘들다.
IT, 로보틱스 등 분야로 진출할 이공계 학생들은 자연의 3대 복잡계의 하나인 인간 인지체계 특성을 대학시절에 배워야 한다 대학과 과학기술계는 그러한 교육 환경을 적극 조성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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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성균관대 심리학과·인지과학협동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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