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얼대는 아이를 혼낼 때 불쑥 튀어나오는 말, “좀 어른스럽게 못해!”. 그런데 어른스러운 게 뭘까? 자기 감정이나 욕구를 잘 통제하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 것? 실제로 모든 어른은 그렇게 어른스러운가?
“우리 시대 중년의 고민은 사회적으로 길들여진 어른의 이미지에 갇혀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어른이 될 기회를 잃어버리는 데 있다”고 주장하는 윤용인(43ㆍ온라인 여행사 노매드 대표)씨는 “어른도 때로 아이들처럼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서 어른의 정체성 탐험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윤씨가 최근 ‘어른들의 속마음을 파고드는 심리누드클럽’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 <어른의 발견> (글항아리 발행)을 출간했다. 30대 중후반 잘 나가던 직장을 뛰쳐나와 딴지일보 편집국장으로 활발히 활동하며 ‘준비된 결혼, 당당한 이혼’을 담론화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답게, 그의 책은 결혼 부부 아이 중년 생활 등 크게 5가지 카테고리를 통해 ‘한국사회에서 어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캐묻는다. 어른의>
윤씨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심통(心痛)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숙한 환자가 육체의 병을 순순히 인정하듯 건강한 어른이라면 마음의 병을 감추지 않아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 “마흔이 됐을 때 엄청난 홍역을 앓았어요. 귀걸이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돌아다녔을 정도로 자신만만했던 삼십대가 지나고 문득 주위를 돌아보니 처자식은 딸렸는데 가진 것은 달랑 32평 아파트 한 채. ‘아, 이게 뭔가, 내 인생이 뭔가’ 한동안 죽기보다 힘든 성장통을 겪었지요.”
그때부터 윤씨는 어른스러움이라는 것, 중년이라는 나이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촘촘히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인간은 어차피 불완전한데 어른은 완벽하고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인식이 문제예요. 어른도 외롭고, 울고 싶을 때 누군가 안아줄 사람이 필요해요. 아이들과 다른 것은 약한 인간이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책임지려고 노력하는 것 뿐이죠. ‘불혹’이면 인생 다 산 것처럼 말하지만 평균수명 60세이던 시대에나 통용되던 개념을 지금 적용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요?”
윤씨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어른이 되는 기회는 자기검열 혹은 성찰을 통해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른 나이에 ‘빨리 안정을 찾고 싶어서’ 결혼을 서두르는 스포츠 스타들에게서 발견되는 남성중심적 세계관을 비판하고, 금실 좋은 부부는 평생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는 ‘원앙컴플렉스’가 맞벌이시대 결혼생활에는 얼마나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는가를 털어놓는 식이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남편이 직장동료들과 밤늦게까지 술자리 토론에 열중할 때 아내는 화장실 청소하고 식구들의 밥그릇을 닦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그게 정당한가?’를 생각해보는 것이나, 자기 마음 속에 들어있는 ‘아이’를 꺼내 자식과 친구 시키는 것을 통해 부모 역할을 새롭게 돌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욕망에 솔직해지고 타인의 욕망에 너그러워지는 것도 중요하다. 나이 들수록 협소해지는 놀이공간은 어른들의 삶을 더 화석화하고 사고의 틀을 편협하게 만든다. 윤씨는 온라인상에 ‘한량’이라는 이름의, 철저히 신세대를 소외(?)시키는 35세 이상 어른 전용 문화&놀이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결국 천편일률적인 어른이 될 것이냐, 주체적으로 어른이 될 것이냐의 문제라고 봐요. 바라는 것은 대한민국 어른들이 ‘중년’이나 ‘40대’라는 단어 하나로 뭉뚱그려지는 시대는 이제 끝났으면 하는 것이죠. 다양한 어른의 모습으로 더 다양하고 재미있게 살기 위해 이제 ‘어른의 성장기’를 쓸 차례라고 말하고 싶어요.”
다음은 주체적인 어른으로 살기 위해 윤씨가 권하는 ‘어른 수칙’ 몇 가지.
▲유부남들아, 밖에서 맘껏 놀려면 집안 숙제는 다 해놓고 놀아야 한다.
▲아빠 같은 엄마, 엄마 같은 아빠의 자유로운 바통 터치. 그 사이 아이는 다빈치를 닮아간다.
▲타인을 만나거든 경계감을 먼저 갖기보다, 그 사람 머리 위에 둥둥 떠다니는 외로움의 유령을 보라. 그 묘한 동질감이 사람의 벽을 일거에 무너뜨린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는 예수, 그 예수보다 더 오래 살고 있는 마흔의 당신. 멋지다!
▲불혹(不惑): 이웃집 여자가 유혹해도 혹하지 않으려는 것, 내가 유혹해도 이웃집 여자가 혹하지 않는 것. 어쨌거나 유혹은 하는 것.
▲이해는 투사(projection)를 통해, 이해 안 됨은 호기심을 통해 대화하라.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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