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진해운은 최근 북미지역 운송의 관문인 미국 LA의 롱비치항이 정체 현상을 빚자 대안항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 있는 프린스 루퍼트항을 낙점했다.
한진해운이 이 곳을 택한 것은 루퍼트항이 갖고 있는 실용성과 기능성 때문이다. 루퍼트항은 아시아와 북미를 연결하는 최단 거리에 위치해 물류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는데다, 1년 내내 바다가 얼지 않는 부동항이어서 연중 운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2. 기아자동차는 최근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 부사장 출신인 남광호(55)씨를 유럽총괄법인장(부사장)으로 영입했다. 국내 완성차 업체에서 수입차 업체 임원을 영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동차 업계에선 기아차가 그간 자사 출신을 중용하는 순혈주의에서 탈피, 능력 위주로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채용하는 실용주의 인사 정책으로 전환한 것으로 평가했다.
'기능'과 '실용'을 중시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MB노믹스' (이명박 당선인의 경제정책)가 재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그룹들이 MB노믹스의 핵심인 '실용주의'(pragmatism) 경영 전략을 앞 다퉈 도입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까지 10년 동안 정부의 경제정책이 노동과 분배라는 '이상'(理想)'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기업 이익의 극대화라는 '실리'(實利)를 추구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그런데 실용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이명박 정부가 등장하면서 재계의 경영 노선이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들은 우선 글로벌 인수ㆍ합병(M&A)과 신규 투자 등을 총괄 지휘할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마케팅과 영업 분야를 확대하는 등 조직부터 실용 위주로 개편하고 있다. 정몽구 현대ㆍ기아차그룹 회장은 새해 들어 해외영업본부 조직을 확대하는 등 마케팅과 판매 조직을 대폭 강화했다.
또 현장을 진두지휘할 경영진에 50대 인사들을 대폭 중용했다. 현대차 이정대 사장, 현대제철 박승하 사장, 엠코 김창희 사장 등 50대를 대거 부회장으로 승진 발탁한 데 이어, 현대차 김승년 부사장, 기아차 정성은 부사장, 현대모비스 서영종 부사장, 현대제철 김태영 부사장, 엠코 이병석 부사장을 각각 사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조직을 쇄신했다.
현대차 안팎에선 "정 회장이 과거 그룹의 생존을 가장 중시하는 수성 위주의 경영 전략에서 벗어나 글로벌 경쟁 체제에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실용주의 경영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삼성그룹은 비자금 특검이라는 악재에도 불구, 지난해 10월 출범시킨 '신수종사업 태스크포스(TF)'를 적극 가동하며 미래 성장동력 발굴에 나서고 있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그룹 역량의 60% 이상을 신수종 사업 발굴에 쏟아 붓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LG그룹도 최근 외국인을 LG전자의 최고 구매담당자로 임명하는 등 외부 전문가를 적극 수혈하는 실용주의 인사정책을 도입했다. SK그룹이 최근 소사장 제도를 도입하고, 두산그룹이 그룹 차원의 M&A팀 외에 계열사별 M&A팀을 구성한 것도 실용주의 경영 전략과 코드가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제품 개발에서도 실용 코드가 확산되고 있다. 인도에서 불어온 저가차 바람을 타고 현대차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가격 거품을 뺀 저가차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게 단적인 사례이다. 현대차는 2010년께 최소한의 필수 기능만 갖춘 400만원대 저가차를 세계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며, GM대우차도 저가차를 개발하고 있다.
IT업계에도 워드와 웹서핑 기능만 갖춘 20만원대, 40만원대 노트북이 등장하는 등 실용적인 제품들이 각광 받고 있다. 유통업계에도 실용 바람이 거세다.
작년 말 '가격혁명'을 선언한 신세계 이마트는 올해 유통 거품을 제거하기 위해 자체브랜드(PL)와 해외 직소싱에 주력할 계획이다. 올해 PL 매출 목표를 전체 매출의 13%인 1조3,000억원으로 설정했고, 2010년엔 23%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현대경제연구원 허만율 기업전략실장은 "국내ㆍ외 환경 변화와 새 정부의 실용주의 경제정책에 따라 그 동안 형식에 치중해온 기업들이 실용과 기능 위주로 조직을 개편하고 있다"며 "조직의 기능과 유연성을 키우기 위해 TF와 같은 메트릭스 조직 강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유인호 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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