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이론은 세계화가 ‘윈윈 게임’이라고 가르쳤지만 이제 아니다. 우리에겐 새로운 해법이 필요하다.”
23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막한 세계경제포럼 연차회의(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스티븐 로치 모건 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말이다. 지난 20여년간 세계경제를 지배했던 세계화의 문제점이 곳곳에서 드러나면서 새로운 대안이 논의돼야 할 시점이라는 얘기다.
최근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를 계기로 세계화를 대신해 보호주의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23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따르면 세계 금융위기가 진정된 후 어떤 후폭풍이 몰려올지 불확실하지만, 급속한 세계화 시대가 끝나고 규제와 분배에 초점을 둔 큰 정부의 시대가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1929년 대공황을 계기로 보호주의와 정부 재정지출에 초점을 둔 케인지 정책이 등장했고 70년대 오일 쇼크로 무게 중심이 시장 자율화와 민영화 쪽으로 이동했다면, 지금은 무게추가 이번 경제 위기를 계기로 다시 보호주의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정치ㆍ경제 지도자들이 모여 지구촌 이슈를 토론하는 다보스 포럼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역력하다. 파스칼 라미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은 “올해가 새로운 흐름을 조율하는 결정적인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씨앗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2030년쯤 미래의 학생들이 경제학 교과서를 공부할 때면 2008년은 시장의 재규제화와 분배 중심의 세금 체제, 새로운 형태의 국제협력 등의 기반을 닦은 한 해로 기록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보호주의가 대두되는 배경은 다양하다. 미국 발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도미노 공황에 빠진데서 보듯 글로벌 자본에 무방비로 노출된 금융시스템 문제 외에도 지구온난화, 국부펀드 지배권 강화 등이 이런 추세를 뒷받침한다.
선진국들이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적게 받는 인도와 중국에 대해 수입규제 조치를 고려하고 있고, 아시아와 중동의 국부펀드가 선진국의 핵심 기업을 집어삼키고 있는 데 대한 불만도 폭발 직전이다.
여기엔 세계화가 성장을 높였을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미국만 해도 2000년에 비해 국내총생산(GDP)이 18% 상승했지만 같은 기간 근로자의 임금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세계화로 인한 임금의 하향 평준화 탓이다.
로고프 교수는 “올해 미국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분배와 평등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그 동안 논의에만 그쳤던 보호주의가 행동으로 옮겨질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에만 반 중국 관련 법안이 20여개나 제출됐다.
2006년에는 이 같은 법안들이 실제 통과되지는 못했지만, 미 대선 후보들 모두 중국에 강경자세를 취하고 있어 차기 정부에선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이에 따라 다자간 무역자유화를 목표로 하는 도하라운드 협상도 타결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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