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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도 좋지만… '뻥 사극' 심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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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도 좋지만… '뻥 사극' 심하네

입력
2008.01.2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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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근처의 회원제 격구장. 좌의정 서윤섭이 친 공이 그린 위 홀컵으로 빨려 들어가자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캐디가 박수와 함께 “호타(好打)”를 연발한다.

그런가 하면 저잣거리 술집에서는 무희들이 테크노 댄스를 춘다. KBS <쾌도 홍길동> 에서 그려진 조선시대 모습이다. “사극에서 기름기와 무게를 뺀 코믹 사극을 표방했다”는 기획의도를 십분 존중한다 치더라도 파격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정도는 덜 하지만 정통 사극도 연일 역사 왜곡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최근 방영 중인 SBS <왕과 나> , KBS <대왕세종> , MBC <이산> 도 역사 왜곡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역사 기록과 정치사건 중심의 정형화된 사극을 탈피해 기록 뒤에 숨어 있는 인간에 포커스를 맞춘 휴먼 드라마”를 표방하면서 역사적 사실은 그저 배경에 불과한 극중 병풍으로 전락해 버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왕과 나> 에서 예종은 내시들을 핍박하다가 독살된다. 당시 내시의 위상이 조정 대신과 왕족을 쥐락펴락하는 것이 불가능했는데도 왕을 죽이고 정치력을 행사하는 등 ‘권력의 중심’에 굳건히 서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드라마의 주인공 김처선도 문제다. 김처선이 ‘문종 때부터 연산군까지 6대 왕을 모셨다’는 역사적 기록은 뒤로 한 채 예종 때 입궐 해 연산군의 아버지인 성종이 왕위에 있을 때까지도 일개 내시에 머무르고 있다.

KBS <대왕세종> 은 태종의 세 번째 아들인 충녕대군이 세종이 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리려다 ‘왕자의 가출 사건’까지 창조해냈다. 백성의 삶이 궁금한 충녕대군이 남몰래 궁을 빠져나간 것도 모자라 납치까지 당한다. “고려의 부활을 꿈꾸는 세력에게 납치됐다가 풀려나는 장면은 충녕대군의 범상치 않음을 그리려 했다”는 제작진의 설명은 억지스러움을 느끼게 하기 충분하다. 앞으로 왕권을 놓고 펼쳐질 양녕대군과의 치열한 암투도 자칫 세종대왕의 본 모습을 훼손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MBC <이산> 은 이병훈 프로듀서가 오랫동안 실록에 충실한 사극을 연출한 때문인지 대체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전개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 이산(훗날 정조)이 궁궐 밖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이나, 궁녀 성송연을 도화서 다모로 그려낸 것은 모두 허구다. 사료를 근거로 봤을 때 혜경궁 홍씨가 정조와 정치적으로 마찰을 빚고, 세자를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만큼 의지가 강한 여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역사 자료가 풍부한 조선시대 사극도 이러한데 그 이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의 역사 왜곡이 더욱 심한 것은 불문가지. MBC <태왕사신기> 는 환웅이 환생한 인물이 광개토대왕이라는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으로 비판을 받았다.

MBC <주몽> 은 고구려를 부각시키려는 의욕이 강했던 나머지 부여를 작은 소국이면서 민족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주체로까지 묘사했다. 역사학계의 일반적인 해석은 고구려가 부여의 정통성을 계승하려 했다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야사를 정설인 것처럼 포장해 시청자들의 혼란을 야기하는 장면들이 다수 눈에 띈다”면서 “다큐멘터리가 아닌 드라마라고 해도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퓨전 사극’이나 ‘코믹 사극’을 표방하면서 더욱 엉뚱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구나 수출된 사극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중요한 수단이어서 그 파급 효과는 더욱 크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강명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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