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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경과 첫 만남… 소탈한 인상에 겸손·관대함 갖춘 진정한 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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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경과 첫 만남… 소탈한 인상에 겸손·관대함 갖춘 진정한 산악인

입력
2008.01.2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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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대의 나는 오늘도 산에 오른다] <16>1996년 뉴질랜드 등정갔다 집 방문"모험의 세계선 물러나는 것도 용기"자상한 가르침·인간적 면모 안잊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탐험으로 인간의 달 착륙과 지구의 꼭지점 에베레스트 등정을 꼽을 수 있다. 남극과 북극에 이어 에베레스트를 ‘제3의 극지’라고 하는 것은 스위스의 등산가 뒤렌 푸르트가 8,000m급의 고산을 ‘Drittenpol(The Third Pole)’이라 명명한데서 비롯됐다.

1969년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이 과학문명의 쾌거였다면, 에베레스트 등정은 인간 의지와 집념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봉우리 하나를 오르기 위해 사람들은 장장 32년이란 세월을 투자했고 15명의 귀한 목숨을 바쳤다. ‘Peak XV’라는 측량부호를 가진 이 봉우리가 8,848m의 높이를 가진 세계 최고봉으로 확인된 지 100년만의 일이다.

에베레스트가 세계 최고봉으로 등극하기 전까지는 여러 산들이 영광스러운 챔피언 자리를 다투었다. 한때는 남미의 침보라소(6,310m), 그 다음엔 다울라기리(8,167m) 캉첸중가(8,586m) 암네마친(6,283m) 등이 최고봉으로 인정받았다. 또 한때는 미니아 콩카(7,556m)를 9,220m로 오인해 흥분으로 가득 찬 동요가 일기도 했다.

에베레스트를 처음 올라 인류의 숙원을 푼 사람은 에드먼드 힐러리경과 네팔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다. 55년 전 이 봉에 처음 오른 위대한 탐험가 힐러리경이 11일 에베레스트를 넘어 영면의 길을 떠났다.

1953년 5월29일 오전 11시30분 에베레스트 정상에 우뚝 서서 유엔기, 영국기, 네팔기, 인도기가 달린 피켈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서있는 한 장의 사진에 전 세계는 놀라움과 흥분에 휩싸였다. 사진 속 주인공인 텐징의 장한 모습은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날 힐러리는 정상에서 텐징의 사진만 세 장 찍었고 훗날 그 중 한 장이 전 세계 신문과 잡지의 첫 장을 장식했다. 정상 사진은 불가능에 대한 인간 승리의 기록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이들의 눈부신 업적에서 세속의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대리만족을 느꼈다.

내가 힐러리라는 거인과 첫 만남의 기회를 가진 것은 1996년이다. 마운트 쿡 등반과 밀포드 트램핑을 하기위해 뉴질랜드를 방문했다가 관광성의 주선으로 오클랜드의 리므에라 로드에 있는 힐러리경의 자택을 방문했다. 바다를 굽어보는 전망이 수려한 언덕에 자리 잡은 힐러리경의 서재에서 3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던 것이다.

그의 첫 인상은 소탈했다. 세속적 부와 명예를 초탈한 노신사의 겸손과 넉넉함이 거대한 산의 무게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키 188㎝의 거구에 보통 사람의 2배가 되는 큰 손과 발을 가진 거인이었다. 그의 머리는 에베레스트의 만년설처럼 백발로 덮였고, 붉은 색을 띤 얼굴은 건강미가 넘쳤다.

그에게 건강의 비결을 묻자 “너무 바빠서 늙을 시간이 없다. 항시 새로운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바쁜 일에 몰두하며 은퇴를 하지 않고 부지런하게 살면 늙을 시간이 없다”고 말하며 밝게 웃었다. 그는 셰르파가 아니었으면 꿈을 실현할 수 없었기에 보답의 뜻으로 네팔 산골 마을에 학교 20개, 병원 2동, 비행장 2곳과 많은 교량을 건설하고 식목사업을 주도하면서 사랑을 베풀고 겸손과 박애를 실천,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 주었다.

그는 젊은 산악인들에게 주고 싶은 말을 묻자 “모험의 세계에서는 상황이 나쁘게 전개될 경우 일단 물러나는 것도 용기라고 본다. 후퇴는 전진을 위한 기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메스너도 고산에서 상황이 악화되자 하산 후 재시도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에베레스트에서 무산소 등반을 실현한 메스너와 하벨러는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이룩한 강인한 등산가라며 그들의 업적을 극찬하기도 했다.

힐러리가 정상에서 텐징의 사진만 찍고 자신은 사진 찍기를 거절한 일화는 겸손과 관대함을 갖고 살아온 힐러리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유명한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온갖 위험을 함께 극복한 미천한 신분의 동반자 텐징에게 공을 돌려 그를 영웅으로 대우했기 때문이다. 우정과 신의 그리고 복종이 현대사회에서 잊혀진 지 오래된 미덕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는 텐징만을 사진에 담은 또 하나의 이유에 대해 “내가 아는 한 그는 단 한 번도 사진을 찍어 본 적이 없었으며 에베레스트 정상은 그에게 사진 찍는 방법을 가르쳐 줄만한 장소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결국 사진에 담긴 인물은 텐징 뿐이었다.

힐러리와 텐징 중 누가 먼저 정상을 밟았는지에 대한 질문에서도 “텐징과 나는 한 팀으로 함께 정상에 도착했다. 그 작업, 위험, 성공 모두는 우리 팀의 공유물이다. 팀 전체의 노력과 협동이 중요할 뿐 나머지는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의 끈질긴 질문에 “누가 먼저 정상에 도착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 두 사람은 어려운 문제를 함께 해결했다. 다만 남봉에서 정상까지는 내가 리드했다”고 말했다. 첫 번째 등정渼?힐러리, 텐징은 두 번째였다. 그러나 역사는 이들을 1등과 2등으로 나누어 기록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한 줄을 묶고 함께 정상에 섰다고 기록할 뿐이다.

힐러리와 텐징. 이 두 사람의 아들과 손자들도 대를 이어 에베레스트를 올랐다. 힐러리의 아들 피터 힐러리는 90년에, 텐징의 아들 잠링 텐징 노르가이는 96년에 정상에 올랐으며, 텐징의 손자 라시 왕후 텐징도 2002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 3대 등정의 기록을 세웠다.

코오롱등산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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