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 / 이마고"20세기 인간의 얼굴"… 괴짜 천재 화가의 삶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1989년 1월 23일 85세로 사망했다. 흐물흐물 녹아내린 시계들이 바닷가에 늘어져 있는 그의 작품 ‘기억의 영속’(1931) 만큼 20세기적인 인간의 상상력 혹은 내면을 잘 드러낸 그림도 없을 것이다.
몽환, 착란, 과대망상 같은 무의식의 세계를 최초로 회화에 도입한 그는 ‘미술계의 프로이트’ ‘미스터 초현실주의’로 불렸다. 젊은 시절 <꿈의 해석> 을 읽고 프로이트를 숭배했던 달리는 3차례나 빈으로 그를 찾아갔지만 냉대당하다, 34세 때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주선으로 런던에서 비로소 그를 만난다. 꿈의>
자신의 야심작이라며 논문 한 편을 읽어달라고 졸라대는 달리를 보고 프로이트는 츠바이크에게 말했다 한다. “내 이렇게 광적인 스페인 사람의 원형은 처음 보겠네! 돌기는 돌았구만." 괴짜, 미치광이, 광대 등이 달리를 따라다닌 수식어였지만 누군가의 말대로 "인간 달리를 미워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달리를 빼놓고 20세기의 얼굴과 빛깔을 상상할 수는 없다." 달리와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은 20세기 인간들이 외면할 수 없었던 그들 자신의 얼굴인 것이다.
달리의 생에서는 갈라를 빼놓을 수 없다. 1928년 파리로 건너가 초현실주의 화가, 시인들과 교유하던 달리는 이듬해 시인 엘뤼아르의 부인 갈라를 만난다. 시 ‘자유’의 그 엘뤼아르다. 자신보다 10살 연상의 이 여인에게 달리는 빠져들고, 달리의 천재를 알아본 갈라도 엘뤼아르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어머니보다, 아버지보다, 피카소보다, 돈보다 더 사랑한다.”
갈라는 1982년 사망할 때까지 ‘초현실주의의 뮤즈’로, 달리의 수많은 작품의 모델이자 예술활동의 매니저였다. 2002년에 국내 번역된 <살바도르 달리> 는 달리가 37세 때 “모든 사람들과 반대로 가는 나는 회고록을 먼저 쓰고, 그 다음에 그 내용을 사는 것이 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는 괴짜다운 일성을 던지며 발표한, 흥미로운 자서전이다. 살바도르>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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