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ㆍ개혁성향 시민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새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거리 집회나 성명으로 목청을 높이고 있지만, 인수위는 시민사회단체들의 목소리에 거의 귀기울이지 않는 모습이다.
새 집권 세력과 소통할 통로각 막힌 채 한데로 몰린 시민사회단체들은 "한정된 시간에 새 정부의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제약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새 정책 시행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집행 비용이나 진통을 줄이기 위해선 '합의와 참여'라는 민주주의의 가치도 소중하다"며 의견 개진 기회를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거리로 나선 단체들
23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 앞에서는 인권단체연석회의의 '국가인권위원회 대통령 직속 기구 변경 반대 시위', 민주노총의 '공공부문 구조조정 민영화 저지 기자회견', 세계행동의 날 조직위원회의 '에너지ㆍ물ㆍ철도 민영화 및 구조조정 반대 기자회견'등이 이어졌다. 인수위 앞이 각양각색의 1인 시위와 시민사회단체의 단골 집회장으로 변한 것이다.
물론 '집단 이기주의'나 '변화에 대한 저항'으로 볼 수 있는 집회도 있지만, '인재과학부→교육과학부'명칭 변경 소동 과정에서 나타났듯 집회ㆍ시위 경험이 없는 학술단체나 보수계열 단체까지 "공론화 과정이 없었다"고 반발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안진걸 참여연대 팀장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민간 영역으로부터 정책적 제안을 받았고, 대통령이 시민사회단체 신년 하례식에도 참석할 만큼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했다"며 "요즘처럼 인수위에 달려가 매일 시위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진보, 보수 등 이념적 성향을 떠나 새 정부는 기본적으로 시민사회영역에서 인재풀을 찾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며 "새 정부에 시민사회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막힌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전 정부와 달리 공식ㆍ비공식 통로가 거의 막힌 때문인지 참여연대는 23일부터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 보내는 정책 편지'를 매일 1, 2건씩 12차례에 걸쳐 인수위에 우편 발송하고, 홈페이지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정부 독주 우려 속 자성 목소리도
진보개혁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인수위가 불도저식 일방통행형 개혁을 한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공청회, 토론회, 이해당사자 및 시민사회의 의견 수렴 등 사회적 합의 절차를 외면한 채 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대영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은 "인수위가 의욕이 앞선 탓인지 사회적 검증과 공론화 과정 없이 성급하게 정책을 쏟아내며 '밀실행정'을 하는 느낌"이라고 꼬집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정권이 바뀌었으니 정책 전환을 할 수 있지만 최소한의 논의나 소통 없이 급격히 전환하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소통 부재가 자칫 사회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김선혁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을 폐지한 것처럼 시민사회의 의견을 취합할 제도화된 통로를 막으면 시민사회단체와 정부는 충돌할 수 밖에 없다"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단체 일각에서는 "참여정부 등에서 일부 시민운동가들의 정권 참여로 시민운동의 순수성이 훼손된 만큼, 이제 다시 거리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현정기자 agada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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