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전 대만 총선에서 야당 국민당이 '정치 지진'으로 평가된 압승을 거뒀다. 3월 총통 선거에서도 마잉주(馬英九) 국민당 후보가 여세를 몰아 승리할 공산이 크다. 1949년 중국 공산당에 쫓겨온 이래 독점한 정권을 2000년 토착ㆍ자주 세력인 민주진보당에 내준 지 8년 만에 되찾을 전망이다.
대만의 정치지형 변화는 우리와 닮은 데가 있다. 국가 정통성에서 수세에 있는 처지는 사뭇 다르지만, 분단국가의 대내외 정치적 선택을 헤아리는 데 참고할 만하다. 우리보다 훨씬 절박한 상황과 주변 정세를 지혜롭게 헤쳐 나온 역사에서 배울 게 많다.
■ 경제로 평화 좇은 대만 지혜
국민의 86%가 토착 주민인 상황에서 국민당이 권토중래한 것은 천수이볜(陳秀扁) 총통의 민진당 정권에 국민이 싫증과 불안을 느낀 때문이다.
국민당 독재 종식과 '대만 독립'을 앞세워 집권한 민진당은 역사 바로 세우기 등으로 정체성 확립을 적극 추구했다. 또 민중의 오랜 열망에 힘입어 지지 기반을 넓혔다.
그러나 중국이 '무력사용' 위협으로 독립을 견제하고, 미국이 '대만수호' 공약으로 맞서면서 긴장이 지속되는 바람에 국민의 불안과 위기감이 높아졌다.
여기에 경제성장 침체로 쌓인 불만이 한꺼번에 분출, 국민당도 놀란 선거 결과를 낳았다. 군사적 긴장을 빌미로 일본과 함께 대 중국 동맹강화에 힘쓴 미국도 민진당의 거친 행보가 세력균형의 틀을 해치는 것은 꺼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정이 전통적 '현상유지'를 추구하는 국민당을 대만인들이 다시 찾은 바탕이다. 이 대목에서 유념할 것은 국민당의 '현상유지' 전략이 단순히 중국과의 대치와 대미 동맹을 좇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마잉주 후보가 "통일하지 않고(不統), 독립하지 않고(不獨), 무력을 쓰지 않는다(不武)"고 천명한 데서 엿볼 수 있다. 취약한 정통성을 지키면서도 중국을 자극하지 않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국민당의 실용주의는 이미 1980년대 말, 대륙과의 인적ㆍ경제적 교류를 과감히 추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당은 "대만의 성공 경험을 대륙에 확산, 전 민족의 역량을 배양하고 중흥 통일을 달성한다"며 공세적인 교류정책을 폈다. 이때 대륙정책을 맡은 행정원 대륙공작회보의 책임비서가 지금의 마잉주 후보였다.
하버드 대 법학박사로 장징궈(蔣經國) 총통의 영어 통역을 지낸 그를 89년 1월 대륙 탐친(探親) 관광열기가 뜨거운 타이페이(臺北)에서 인터뷰 한 적이 있다. 그는 "대륙과의 교류에 따라 대륙 인민들이 자유 민주 균부(均富)의 대만 체제로 통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받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런 적극적 대륙정책은 '1국2체제' 통일방안을 앞세운 중국의 압박에 몰린 처지를 극복하고, 경쟁국에 앞서 중국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이는 곧 통일이 아닌 현상 고착을 노린 것이다.
20년이 흐른 지금, 양안의 경제교류 규모는 25억 달러에서 800억 달러 이상으로 커졌다. 2006년 수출액 2230억 달러에서 중국이 23%, 홍콩이 16%로 1ㆍ2위를 차지했을 정도다.
이 같은 경제적 유착에 따라 중국의 통일전략은 물론, 주변 열강의 어떤 군사전략적 게임도 쓸모 없게 됐다는 진단은 주목할 만하다.
경쟁과 협력 속에 공존하는 것이 천하 대세인 마당에, 군사안보 수단은 경제의 보조 역할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일본도 겉보기와 달리 이런 사리를 좇고 있다. 10년 만에 보수 정권이 권토중래할 우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 군사적 수단 앞세우는 잘못
이명박 당선인은 '비핵 개방 3000'을 대북 정책으로 내걸었다. 핵 폐기와 상호주의적 경제지원을 나란히 목표로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 확산저지구상(PSI)과 미사일방어(MD) 체제 참여 등 군사전략적 수단을 앞 다퉈 치켜드는 모습은 평화적 현상유지에도 역행할 것을 걱정하게 한다. 우리보다 처지가 열악한 대만의 지혜를 본받으려면, 햇볕과 북핵 너머를 바라보는 진정한 실용적 안목이 필요하다.
강병태 칼럼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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