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초등학생이지만 증손자뻘 동급생 못지않은 향학열을 불태워온 케냐의 키마니 응강가 마루게(88) 할아버지가 정든 학교를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최고령 초등학교 입학 기록으로 기네스북에도 오른 할아버지는 건강 등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대통령 선거 후유증에 따른 정국 혼란으로 피난가면서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됐다.
대선 부정 의혹으로 촉발된 케냐의 유혈소요사태는 작년 말부터 야당의 시위와 정부의 무력진압이 반복되면서 1,000명 가까운 사망자와 25만명 이상의 피난민이 발생했다. 마루게 할아버지가 사는 엘도레트의 랑가스 에스타테에서도 12월 31일 폭도에 의해 11명이 피살되는 최악의 폭력사태가 빚어졌고 살아남은 주민 대부분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 피신했다.
엘도레트는 대선에서 패배한 야당 지도자 라일라 오딩가 후보의 텃밭으로 반정부 시위대가 재선된 음와이 키바키 대통령과 같은 키쿠유 부족을 무차별 공격, 살육하고 있다. 때문에 키쿠유 부족으로 혼자 살며 학교를 다니던 마루게 할아버지는 신변에 위험을 느끼고 자택에서 나왔다가 경찰 순찰차를 만나 임시 수용소로 들어갔다.
그는 “폭동이 일어나자 배우는 책 전부와 옷가지 몇 벌을 싸서 황급히 집을 탈출했다”며 “하지만 미리 필요한 학용품을 사두었기 때문에 학교에는 당장이라도 다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할아버지가 재학한 카프켄두이요 초등학교가 집에서는 불과 30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나 수용소에서는 10km나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걸어서 통학하기는 힘든 거리이며 지나는 길 곳곳에서 폭력과 살인이 저질러져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할아버지도 “아직 치안 상황이 좋지 않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며 “학교 출석 일수를 채우지 못하면 5학년으로 진급하지 못하고 퇴학조치 된다”며 조바심을 쳤다. 그는 “지금은 시국이 조용해지길 기다릴 뿐이지만 만약 그렇게 되지 않으면 수용소 부근 학교로 전학해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면서도 “하지만 나의 약점을 잘 알고 늦은 공부를 적극적으로 도와준 선생님들과 헤어지기는 정말 싫다”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참여했지만 가난 때문에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따라서 문맹이라 물건을 살 수 없었고 교회에서 설교를 들어도 성서를 읽을 줄 몰라 실제로 그런 글귀가 있는지를 찾아보지 못했다.
이처럼 까막눈으로 살아오던 중 2003년 정부가 초등교육을 무상으로 전환한 것을 계기로 늦깎이 배움의 길이 열렸다. 그는 교복을 구입한 다음 너무 나이 많은 신입생을 받아 들이는 것을 꺼리는 학교 당국을 끈질기게 설득해 2004년 84세의 나이로 입학했다. 꿈에도 염원하던 학교를 다니게 된 할아버지는 ‘쿠카(할아버지)’라 불리며 어린 동급생들로부터 존경과 보살핌을 받았으며 언제나 칠판에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기를 고집하면서 열심히 배웠다.
입학할 때는 연필 잡는 법도 몰랐으나 이런 노력 때문에 지금은 스와힐리어를 마음대로 구사하게 됐고 3학년 때는 학생회장까지 맡았다. 지난해(4학년) 성적도 58명 가운데 14등의 상위권이었다.
폭동 발발 후 집을 나오면서 챙겨온 교복과 교과서, 공책 11권, 기말시험 성적표를 수시로 펼쳐보는 그는 수용소에서도 동급생들을 불러모아 교복을 함께 입은 채 성서를 읽고 수학을 자습하고 있다.
마루게 할아버지는 대선 결과를 놓고 대립하는 여야를 중재하기 위해 22일 케냐에 입국하는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수완을 발휘해 하루빨리 학교로 돌아가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는 2학년 때인 2005년 아난 전 총장의 초청을 받아 유엔 정상회의 개막에 맞춰 뉴욕을 방문, 무상초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한 인연이 있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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