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학벌주의 때문이다. 우리의 학벌주의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 까닭은 다른 계급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제 통치와 전쟁을 겪으면서 전통적인 계급 구획이 없어지고 가난 평준화가 되었다.
박정희가 산업화를 주도하면서 새로운 계급들이 생겨났지만, 여전히 경제 계급의 구획은 확정되지 않았다. 계급화가 진행되기는 했으나 교육을 통하여 하층계급이 상층계급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 계급지배의 도구 돼 버린 교육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자식 교육에 매진하게 되었고 대학 입시 경쟁이 치열해졌다. 초ㆍ중ㆍ고 모두에서 '입시지옥'이 생겼다. 박정희는 이런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중ㆍ고등학교 평준화를 단행하였다. 그래서 어린 학생들이 입시 지옥에서 해방되었다. 대단한 발전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평준화에 대한 반발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돈 있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과 같은 교육을 받는 것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돈을 이용하여 더 좋은 교육을 받고 싶은데 정부에서 이를 허가하지 않으니, 그 돈이 사교육 시장으로 몰렸다.
전두환은 지나친 과외를 억제하기 위해 현역 교사들의 과외를 금지했다. 그러자 과외 전문 학원들이 증가하였다. 그래서 공교육과 사교육의 이중 구조가 생겨나게 되었다.
공교육 평준화가 교육의 질을 저하시킨다는 주장은 가진 자의 상투적 애용물이다. 그런 증거는 빈약하다. 어쨌든 증거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핵심은 교육의 질, 국가 경쟁력, 이런 것이 아니라 '차등화된 교육'이기 때문이다. 있는 돈 써서 더 좋은 교육을 받게 해 달라는 가진 자의 요구를 더 이상 억누를 수 없게 된 것이 현실의 상황이다. 그것이 '자율'이라는 그럴듯한 구호로 나타날 뿐이다.
그들의 압력으로 평준화는 점차 깨져서 이미 누더기가 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이런 가진 자의 요구가 천천히 실현되도록 이른바 '3불 정책'을 고수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이들의 요구를 억누를 수 없게 되었다.
박정희 이래 40년 동안 계급화는 점차 뚜렷하게 정착되어, 상층계급과 하층계급을 같은 학교에서 교육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국가도 더 이상 그럴 힘이 없게 되었다.
이제 교육은 한국에서 더 이상 계급 이동의 통로가 아니게 되었다. 오히려 교육이 계급 지배의 도구가 되어 간다. 40년 동안 누르고 눌렀던 압력밥통 뚜껑이 이명박 당선으로 한꺼번에 날아가 버렸다.
이명박의 교육 정책은 현실이 되어버린 한국 사회의 계급화를 인정하고 더 나아가 이를 강화하려는 정책이다. 이렇게 보면 학벌주의와 사교육은 사라질 수 없다. 점점 커지는 사교육 시장은 이미 '사교육 권력'으로까지 갈 조짐을 보인다.
■ 해결 어렵다면 완화책이라도
근본 해결책은 없다. 그렇다면 완화책이라도 구상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3불 정책' 같은 것들이다.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서는 평준화 정책을 유지하고 돈 있는 사람만 사교육을 받게 하면 된다.
그들은 어차피 어떤 교육 제도 안에서라도 돈으로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것마저 막을 수는 없다.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기 때문에 이를 공교육에서 흡수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되었다. 그렇게 하면 사교육이 더 심해진다. 지나친 사교육의 원인은 공교육 부실이 아니라 계급 차등화 욕구에 있기 때문이다.
학벌주의와 사교육의 근본 해결책은 없다. 사회구조와 계급구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혁명이 없는 이상 이 구조들을 타파하기는 불가능하다. 단지 좋은 쪽으로 완화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쪽의 교육 정책을 가진 정치세력이 집권해야 한다. 그런 정치세력이 미약하다는 사실은 이미 우리 사회의 계급화가 고착되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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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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