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찬바람 부는 겨울엔 생산을 멈추고 잠에 빠져들지만, 바다는 사철 살아 꿈틀댄다. 뭍의 생명력까지 떠맡은듯 겨울바다의 산물은 더욱 실해진다. 청정의 바다를 끼고 있는 통영의 맛도 지금이 절정이다. 추위에 움츠러든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통영의 맛을 소개한다.
통영 사람들은 굴을 ‘꿀’이라 발음한다. 발음도 그렇지만 맛도 그렇다. 통영의 곳곳에서 보이는 플래카드나 포스터 등은 이렇게 적고 있다. ‘남자가 남자됩니다, 여자가 여자됩니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 여자는 남자를 위해’. 모두 통영굴을 홍보하는 문구다. 시저, 나폴레옹, 카사노바 등 정력적인 남자들이 즐겨 먹었고, 클레오파트라 같은 세기의 미인들도 피부가 고와진다며 굴을 애용했다고 한다.
통영 앞바다는 천혜의 어장이다.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바다를 에워싸 물은 언제나 잔잔하고, 오염원 없는 육지와 섬에서 흘러나오는 영양소가 바닷물을 기름지게 한다. 굴은 보통 10월에서 이듬해 4월까지 채취된다. 한겨울 가장 매섭게 추울 때가 최고로 맛있다.
통영의 굴은 수하식으로 양식된다. 물 속에 길게 늘어뜨린 줄에 굴 포자를 붙여 키우는 방식이다. 갯바위에 붙어 자라는 자연산 굴은 바닷물에 잠겼다 나왔다 반복하며 크지만, 양식 굴은 물 속에 그대로 잠긴 채 성숙한다. 양식이라고 하지만 다른 어류와 달리 사료 등을 먹고 크는 게 아니라 바닷물에서 천연 양분만을 빨아들인다.
통영 시내에는 '굴향토집’(055-645-4808) 등 굴밥을 파는 식당이 많다. 통영까지의 먼 길 가기가 힘들다면 전화택배를 이용해 싱싱한 생굴을 즐길 수 있다. 통영유람선터미널 입구에서 생굴을 직판하는 대양수산(055-644-4980, 011-864-2017)은 생굴 1kg을 6,000원에 택배 판매한다(4kg 이상은 택배비 무료).
통영 바닷가 횟집 등 음식점의 메뉴에선 ‘메기탕’을 곧잘 볼 수 있다. 바닷가에서 왠 메기냐 하니 민물메기가 아닌 바다메기, 물메기란다. 통영사람들의 겨울 해장국이 물메기탕이다.
겨울 무와 파를 듬성듬성 썰어넣고 굵은 소금으로 간을 해서 먹는 물메기탕은 비린내 없는 담백하고 시원한 맛으로 지난밤의 숙취를 말끔히 씻어낸다. 물메기는 피부가 흐물흐물하고 모양이 징그러울 정도로 못생긴 물고기다. 지역에 따라 곰치, 물곰, 물텀벙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겉은 못났지만 이 물고기로 끓인 국은 속을 시원하게 해준다. 정약전의 <자산어보> 에는 ‘고깃살이 매우 연하고 뼈도 무르다. 맛은 싱겁고 곧잘 술병을 고친다’고 기록돼 있다. 자산어보>
통영의 새벽 맛을 느끼고 싶다면 서호시장의 ‘시락국’을 권한다. 갓잡은 생선이 펄펄 뛰듯 새벽의 서호시장은 활기로 꿈틀댄다.
서호시장 대장간골목에는 50년째 새벽부터 문을 여는 ‘원조 시락국’ 집이 있다. 이 집의 시락국은 장어를 13시간 이상 고아 낸 육수에 시래기를 넣고 끓인 된장국이다. 가게는 초라하리만큼 작다. ‘ㄱ’ 자로 꺾인 테이블 주위로 등받이 없는 간이 의자가 한 15개쯤 둘러있다.
메뉴는 ‘말이국밥’ ‘따로국밥’ ‘국물’. 국물에 밥을 말아 함께 나오면 말이국밥(3,500원), 공기밥을 따로 내오면 따로국밥(4,000원), 밥 없이 국물만 원하는 이들을 위한 국물(3,000원)인데 모두 시락국 한 가지다. 안주인이 무쇠 가마솥에서 국을 퍼주면 손님들은 테이블 앞에 늘어선 반찬통에서 셀프로 무채, 김치, 젓갈 등 반찬을 접시에 담아 먹는다.
시인 안도현의 시에 ‘통영 서호시장 시락국’이란 것이 있다. “국물이 끓어 넘쳐도 모르는 시락국 집 눈먼 솥이 왁자하였다/ 시락국을 훌훌 떠먹는 오목한 입들이 왁자하였다.” 여객선터미널 앞 서호시장 안. 오전4시~오후5시30분 영업한다. (055)646-5973
통영에 들렀으면 또다른 별미, 충무김밥을 놓칠 수 없다. 먼 뱃길 김밥이 쉬지 않도록 밥 따로 반찬 따로 싸서 팔던 것이 충무김밥의 유래다. 여객터미널 인근에 뚱보할매김밥(055-645-2619)과 소문난3대할매김밥집(643-0336) 등이 몰려있다. 서울의 웬만한 충무김밥집들은 따라가기 힘든, 투박하면서도 더욱 깊은 원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통영=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통영대교 일몰·환상의 해안도로 "나폴리 비켜"
아늑한 겨울 볕에 상쾌한 굴 향이 코끝을 스치는 아름다운 항구도시 통영. 한려수도가 시작되는 ‘한국의 나폴리’ 통영은 섬의 바다이고 충무공의 땅이다. 통영은 먹을거리 만큼이나 볼거리도 화려하다.
산양일주도로를 타고 가다 만나는 달아공원이 최근 낙조 포인트로 사랑받고 있다. 점점이 바다 위에 뜬 섬들 너머로 태양이 지며 동백꽃만큼 붉은 빛을 퍼뜨린다.
하지만 역시 통영을 대표하는 일몰은 철제 아치형 다리인 통영대교를 배경으로 하는 해넘이일 것이다. 바로 옆 다리인 충무교 교각 위에서나 충무교 아래 통영운하 등에서 통영대교를 물들이는 장엄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산양일주도로가 있는 미륵도는 통영대교와 충무교와 함께 해저터널로 이어진 섬이다. 이 터널은 1932년 동양 최초로 만들어진 바다 밑 터널이다. 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의 좁은 물목인 착량은 임진왜란 당시 쫓기던 왜선들이 물길로 착각하고 들어왔다가 빠져나갈 수 없게 되자 급히 땅을 파고 물길을 뚫어 도망쳤다는 곳.
그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죽은 왜군들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한다. 이후 일제는 이곳에 운하를 파서 물길을 넓히고 그 밑에 터널을 뚫었다. 일본인들이 이곳에 다리를 놓으면 한국인들이 자기 조상들의 원혼을 밟게 된다고 터널을 뚫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미륵도 순환도로는 통영이 자랑하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다. 바다를 차창에 달고 한려수도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23km 되는 길가엔 가로수로 심은 동백이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통영은 한산대첩을 이룬 충무공의 호국 성지다. 통영 시내의 충무공 유적은 세병관과 충렬사가 있다. 국보 제305호 세병관은 1604년에 지어진 거대한 객사. 경복궁의 경회루, 여수의 진남관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목조건물로 이름이 높다. 세병관 인근의 충렬사는 충무공을 기리기 위한 사당이다. 충무공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통영관광안내소 (055)650-4691
통영=글ㆍ사진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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