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존슨 지음ㆍ조윤정 옮김 / 살림 발행ㆍ전 2권ㆍ760쪽, 840쪽ㆍ각 권 2만5,000원
미국의 정치학자 찰스 더비에 따르면 개인에 대한 국가의 역할모델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로 갈린다.
보수주의자에게 국가는 엄부(嚴父)의 노릇을 해야 하며, 이 때 성공과 실패는 오로지 개인의 몫이다. 반면 진보주의자에게 국가는 자모(慈母)의 역할을 해야 하며 개인의 실패에 국가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1970년대 초까지 좌파성향의 정치잡지 ‘뉴스테이츠맨’의 편집자로 일하다가 개인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영국노동당의 행태에 질식해 보수주의자로 변신한 역사가 폴 존슨(80)에게 20세기는 국가ㆍ정부ㆍ이데올로기가 개인의 자유를 질식시킨 괴물같은 시대였다.
1920년대에서 90년대까지 70년간의 현대사를 다루고 있는 <모던 타임스> 는 저자의 이런 신념을 바탕으로 한 세기의 무대에 수놓았던 중요한 인물과 사건들을 해석한다. 모던>
국가ㆍ민족ㆍ이데올로기를 강제한 인물들은 거침없이 난도질되고, 개인의 책임감에 방점을 두고 정책을 운영한 정치가들은 대체로 높게 평가받는 것이 특징이다. 역사를 들여다보는 그의 관점은 논쟁의 여지가 많지만 40여권의 저서를 쓴 역사가이자 저널리스트의 저력을 실감케 하는 촌철살인의 인물평은 이 책의 백미다.
미국인들에게 케네디는 젊은 미국의 상징으로 추앙받지만 그가 보기에는 재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아폴로 계획 따위를 추진한 대책없는 이상주의자다.
그는 케네디를 “대통령이라기보다는 프로스포츠 선수였으며 선전선동가, 정치적 장사꾼”이라 폄하한다.
마오쩌둥은 어떤가? 이데올로기로 결코 인간을 개조할 수 없다고 믿는 저자에게 문화혁명이라는 인간개조론을 실행한 마오는 “몸짓이 크고 거칠고 난폭하고 세속적이고 인정머리 없는 농부”에 불과하다고 평한다.
파시즘의 지도자를 바라보는 눈도 단순하지 않다. 4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여론에 민감했던 무솔리니는 그에게 “특이한 능력으로 평생 웅장한 오페라와 코미디 사이를 불안하게 오간 인물” 로 비춰진다.
비폭력 운동가로 만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간디에 대한 점수도 후하지 않다. 금욕적인 그의 행위는 인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인도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간디 역시 “해방운동가가 아닌 정치적 기인”라는 냉정한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다.
도청혐의로 사임한 닉슨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어떨가? 1960년대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이 만든 ‘큰 정부’의 문제점을 개선해 효율성을 회복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리버럴한 미국 동부언론의 마녀사냥에 희생된 “잃어버린 환상의 희생자”로 동정받는다.
지은이는 자신이 견지하고 있는 냉정한 보수주의의 알리바이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등장을 든다.
20세기초 등장한 상대성 이론의 영향으로 서구를 지배했던 절대주의 진리관이 무너지면서 대중들은 동요와 불안에 떨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도덕규범을 상실하고 흔들리는 개인들이 책임감을 망각한 틈을 타 이상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정치가들이 등장해 이들을 현혹시켰고 이는 20세기의 파멸과 비극으로 이어졌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1983년 첫 출간된 뒤 2001년에는 90년대의 사건을 추가한 개정판이 발간됐다. 다양한 역사서, 전기, 일기, 개인서한, 통계 등을 동원한 성실한 논리전개로 꼽힐만한 20세기사로 평가받고 있다.
스스로 진보주의자라 여긴다면 상당한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허나 오른쪽으로 급선회한 대한민국호의 탑승자로서 상대편 ‘보수주의자’들의 머리 속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실망스럽지 않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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