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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욕지도… 옅은 해무 걷히자 그리움이 다가오는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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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욕지도… 옅은 해무 걷히자 그리움이 다가오는섬

입력
2008.01.21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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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그리움이다. 바다 위 망망히 떠도는 아련한 그리움들이 굳어져 내린 게 섬이 된다. 섬으로 가는 여행은 맘 속의 그리움을 만나는 여정이다.

경남 통영의 앞바다 끝에 욕지도(欲知島)란 섬이 있다. 한려수도의 끝자락에 흩어진 10개의 유인도와 45개의 무인도를 거느리고 있는 욕지면의 본섬이다. 통영을 출발해 납도 상노대도 봉도 연화도 등 부속 섬들을 헤치고 나가 맞는 보석 같은 섬이다.

이 섬의 이름에 담긴 뜻은 참으로 고매하다. ‘알고자 하거든’이라, 선문답에 나옴직한 이름이다. 섬들 중에 이보다 철학적인 이름을 가진 섬은 없을 것이다.

통영 미륵도 삼덕항의 이른 아침. 아직 여명도 번지지 않은 오전 6시45분에 출발한 욕지영동고속호가 웅장한 모터음을 울리며 바다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밤바다에 익숙해진 눈에 어슴프레 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옅은 안개옷을 입고 섬들은 잔뜩 웅크린 채 윤곽만을 드러내고 있다. 그 섬들 사이를 헤치며 파도가 숨죽인 평온한 바다를 가르고 배가 나아갔다.

채 한 시간도 안걸려 도착한 욕지도의 동항. 주민 2,400명이 사는 욕지도는 한때 남해의 어업전진기지로 파시가 섰을 만큼 위세가 대단했던 어항이다. 삼천포 남해 통영 사람 모두 이 욕지 바다로 먹고 산다고 했을 정도다. 뭍에서 욕지도까지가 잔잔한 호수 같은 바다라면 욕지도 밖은 말 그대로 망망대해 먼바다다.

다양한 종류의 고기가 산란과 먹이를 위해 기를 쓰고 찾아드는 곳이 바로 욕지도 같은 먼바다와 가까운 바다가 만나는 곳이다. 욕지도의 자연과 풍광도 북쪽의 가까운 바다와 만나는 면은 부드럽고 소박한 반면, 먼바다와 직면하는 남쪽 해안은 웅장하고 거칠다.

욕지도를 구경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다. 배로 실어온 차를 타고 잘 갖춰진 해안도로를 따라 섬드라이브를 즐기는 것과, 섬의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운치있는 오솔길을 따라 트레킹을 하는 것이다. 섬이 크지 않아 하루 안에 2가지 모두를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여유가 남는다면 갯바위나 방파제에 걸터앉아 미끼 갈아 끼기가 귀찮을 정도로 쉴새없이 올라오는 바다낚시의 재미에 빠져들 수도 있다.

해안도로는 야포에서 통단, 노적마을에 이르는 짧은 구간만 제외하고는 모두 포장돼 있다. 여객선 선착장 바로 옆 입석마을의 바다에 떠있는 아름다운 솔섬 ‘옥섬’을 구경하고 본격 드라이브에 올랐다.

비포장길에서 만난 노적마을이 먼저 마음을 빼앗는다. ‘이슬이 쌓여’ 생긴 마을이라, 이름만큼이나 급경사의 비탈에 들어선 마을은 아름다웠다. 내초도와 외초도가 마을 앞바다를 가로막고 있고, 초원 위에 웅크리고 있는 사자를 닮은 사자섬이 그 옆에서 마을을 응시하고 있다.

개미허리처럼 잘록 들어간 개미목과 혼곡을 지나면 욕지도 최고의 비경인 삼여도를 만난다. 삼여도는 송곳처럼 수면을 뚫고 솟은 바위 두 개가 작은 바위 하나를 감싼 모양이다.

삼여전망대에서 삼여도가 가장 잘 보인다. 전망대에서 뒤로 고개를 돌리면 혹처럼 비죽 튀어나온 양판구미를 잇는 길목에 있는 유동마을이 보인다. 좁은 목의 이쪽저쪽으로 바다가 보이고, 그 벼랑 위에 아늑한 마을이 들어앉았다. 하얀 교회 벽면은 겨울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동네 골목길엔 노란 유채꽃이 화단을 메웠다.

해안절벽 위로 이어진 고래머리길을 달리면 덕동해수욕장이 있고 한 두 굽이 더 돌면 울릉도의 도동항을 닮은 몽돌밭 해변의 도동이 나온다. 양지바른 산기슭은 감귤밭이다. 수확시기가 지났음에도 아직 주렁주렁 노란 귤을 매달고 있는 나무도 보인다.

섬의 최고 봉우리는 천왕봉. 해발 392m다. 뭍의 산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높이지만 바다에서 솟은 산이다 보니 그 호쾌함은 내륙의 산을 1,000m 이상 올랐을 때의 느낌이다. 게다가 욕지도 앞바다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한려수도가 아닌가.

동쪽 끝 야포의 일출봉을 시작으로 망대봉, 옥동, 혼곡, 대기봉을 지나 천왕봉 바로 밑 태고암을 거쳐 약과봉을 통해 항구로 내려오는 길이 가장 긴 코스다. 약 4시간 30분이 걸린다.

산 타는데 자신이 없거나 시간이 부족해 욕지도 트레킹의 하이라이트만 느끼고 싶다면 혼곡에 차를 대고 할매바위, 매바위를 지나 대기봉까지만 다녀오는 짧은 코스를 추천한다. 왕복 1시간 20분이면 충분하다.

산길은 계속 오르막이지만 호흡이 가빠질 정도의 급경사는 아니다. 할매바위에 이르면 시야가 터지며 섬의 풍경이 발 아래 펼쳐지기 시작한다. 염소목장 출입문을 지나 로프가 설치된 바위를 조심스레 오르면 매바위. 욕지도 최고의 전망대다. 둥글게 감싼 아늑한 욕지항의 풍경과, 마치 용이 꿈틀대는 듯한 섬의 동쪽자락의 비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산비탈의 경사에 자리한 황톳빛 고구마밭은 그 자체로 설치미술이고, 아스라이 안개 낀 바다 저쪽으로 주변 섬들이 수묵화를 그려내고 있다.

■ 여행 수첩

▲욕지도 가는 배는 통영 산양면 삼덕항과 통영항여객선터미널에서 탈 수 있다. 삼덕항에서 출발하는 욕지영동고속호는 차량 52대와 420명의 승객을 실을 수 있는 대형 선박이다. 훤히 뚫린 선상 휴게실, 찜질방처럼 누워서 갈 수 있는 노약자실과 선내 노래방도 2개를 갖추고 있다. 삼덕 출발 오전 6시45분, 10시, 오후 1시, 3시30분. 욕지 출발 오전 8시, 11시30분, 오후 2시15분, 4시35분이다. 40~50분 걸린다. 일반 7,000원, 중고생 5,600원, 소인 4,500원. 차량 경차 1만6,000원, 승용차 2만원, 승합차 2만5,000원. (055)642-2588

▲통영항여객선터미널에서는 카페리 욕지고속카페리호와 고속여객선 샹그리라호 등이 연화도와 연계해 운항한다. 욕지터미널 (055)641-6183

▲음식점은 여객선터미널 인근에 몰려있다. 인근 가게에서 욕지 고구마나 감귤을 구입할 수 있다. 욕지면사무소 (055)642-3007

욕지도=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욕지도의 달콤한 고구마·새콤한 감귤 '입에 착착'

사투리와 관련한 우스개 하나. 장학퀴즈에 경남 학생 한 명이 출연했다. “일본에서 건너온 구황작물 중 하나로…” 문제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그 학생은 “고매”(고구마의 경남 사투리)라 외쳤다. 사회자가 안타까운 나머지 “세 글자”라고 일러주자, 그 학생은 확신에 찬 듯 다시 더 크게 외쳤다. “물고매!”

욕지도는 고구마로 유명한 섬이다. 바다물고기를 제외하고는 섬의 가장 큰 소득원이 고구마다. 욕지도의 고구마는 ‘물고매’가 아닌 ‘돌고매’. 밤고구마처럼 달면서 돌처럼 단단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욕지의 고구마는 예전부터 유명했다. 전남 벌교에까지 배 타고 나가 쌀 등으로 물물교환을 해왔던 섬의 대표작물이다. 섬의 토질과 기후상 고구마 말고는 농사 짓기도 힘들다.

전에는 마산 무학소주의 주정으로 많이 소비됐다. 욕지영동고속호 대표인 욕지도 토박이 정규상(60)씨는 “기계가 들어가기 힘든 비탈진 밭에서 고구마를 캐다가 일일이 썰고 말려 소주공장에 팔아넘겼는데 그 과정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고됐다”고 회상했다.

이후 일본 등에서 새로운 종자를 들여와 지금의 삶아먹거나 생으로 먹기 좋은 고구마를 생산하게 됐고, 그 맛이 뛰어나 전국에서 가장 비싼 값에 팔리는 명품 고구마 대접을 받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금은 산자락에 노는 밭이 없을 정도로 고구마 농사를 많이 짓는다.

귤은 제주에만 있는게 아니다. 욕지도에서도 재배된다. 1950년 씨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가 욕지도를 방문, 감귤 재배가 가능하게 됐다고 한다.

1967년께 욕지도 부속 섬인 납도에서 시험재배가 이뤄졌고 1970년대에는 본섬에서 본격적인 재배가 시작됐다. 한때 재배농가 500여 가구에 재배면적 120여 ha에 이를 정도로 인기높은 소득작목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제주도에서 감귤재배농이 급팽창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 제주에 비해 단맛이 적었고, 대량 재배가 아니다 보니 가격을 더 이상 낮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사는 돌고 도는 법. 가격과 맛보다는 친환경, 토종이 뜨는 시대를 맞아 욕지감귤은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욕지감귤은 강우량이 적고 일조량이 많아 제주산과는 달리 새콤한 맛이 강하다. 고구마를 닮아서인지 제주의 것보다 단단하다. 농약을 거의 쓰지 않아 껍질은 윤기도 없고 투박하지만 풍부한 과즙을 가진 과육은 새콤달콤한 맛의 조화를 이룬다.

욕지도=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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