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겁쟁이지만 실제로는 영웅처럼 행동해 150여명의 소중한 목숨을 구했다."
17일 런던 히드로공항에서 발생한 영국항공 보잉 777 여객기 불시착 사고는 조종사의 침착한 대응으로 위기를 모면한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일간 미러와 스카이뉴스TV 등 현지 언론은 19일 사고기의 착륙 당시 조종간을 잡은 존 코워드(John Cowardㆍ41) 부기장이 뛰어난 조종술을 발휘해 피해를 최소화했다며 그를 영웅이라고 일제히 치하했다.
이들 언론에 따르면 코워드 부기장은 피터 버크힐 기장으로부터 조종간을 넘겨 받은 지 얼마 안돼 엔진 두 개 모두가 멈추는 순간, 최악의 사태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고 술회했다.
승객 136명과 숭무원 16명을 태우고 베이징을 출발해 런던에 착륙하던 여객기는 활주로를 불과 3.2㎞ 남긴 고도 180m에서 엔진이 돌연 정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엔진 정지로 추진력을 상실한 여객기는 바로 히드로공항 인근 웨스턴 런던의 주택가와 학교, 사무실 빌딩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당시 코워드 부기장은 자동추진 조정장치의 지령에 엔진이 반응하지 않자 수동으로 조작했으나 그대로 활주로와 부딪히며 내렸다.
코워드 부기장은 "시계 표지 펜스를 불과 1.5m 차로 간신히 피해 활주로에 내려 달리면서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쿵' 소리를 내며 기체 바닥이 충돌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는 착륙하는 동안 보잉 777 여객기가 활주로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다했으며 기체가 겨우 멈추자 일순 무시무시한 정적이 일순 흐른 뒤 바로 비명과 함께 객실 승무원들이 대피시키는 소리를 들었다고 전했다.
기체는 적지 않게 파손됐지만, 끝까지 정신을 놓지 않은 코워드 부기장의 초인적인 노력으로 인명피해는 사망자 없이 중상 1명 경상 12명으로 비교적 경미했다.
코워드 부기장은 모든 승객과 승무원이 에어슈트를 통해 안전한 장소로 대피한 것을 확인했을 때 '할 일을 다했다'는 생각에 조종실에 그대로 주저 앉았다고 말했다. 그는 엔진들이 완전히 동력을 잃었으며 공중에선 엔진을 재가동시키지만 착륙 시에는 그렇지 않도록 훈련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사고 후 심리적 안정을 위해 가족이 있는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코워드 부기장은 "비록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났지만 나는 비행에 대해 어떤 두려움도 갖지 않는다"면서도 "정확한 사고 원인은 꼭 알고 싶다"고 말했다.
코워드 부기장은 조종사로서 당연한 임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칭찬받는 게 어색하지만 아홉 살 난 딸이 계속 자랑하는 모습을 보며 나름대로 뿌듯한 기분을 느낀다고 겸손해 했다.
사고 조사단은 코워드 부기장이 훌륭한 조종술을 발휘하기는 했지만 비행기가 불시착하는 동안 상당한 양의 제트 연료유가 누출돼 기체가 불덩이로 변하는 상황을 피하는 기적도 겹쳤다고 지적했다.
일약 국민영웅으로 떠오른 코워드 부기장이 18일 사고 경위를 브리핑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영국항공의 히드로 본사에 도착하자 400명의 직원들이 열렬한 박수갈채와 환호로 맞이했다.
93년 영국항공에 입사한 코워드 부기장은 보잉 777기를 10년간 조종한 베테랑이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