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경기부양
월가가 아시아 국가들에게 긴급수혈까지 받은 ‘치욕’을 맞본 미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소매를 걷어 부쳤다. 미 행정부와 의회,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무너져가는 미국 경제를 구하기 위해 1,000억∼1,250억 달러(약 100조원 안팎)를 투입한 경기부양책을 신속하게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세 당국이 이견 없이 한마음이 됐다는 것은 그만큼 미 경제의 침체가 심각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특히 세계 금융을 주도해온 미 월가의 투자은행들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긴급 자금을 수혈 받은 것을 두고 미국은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 민주·공화 1,000억불 규모 합의… FRB도 동감
16일(미국시간) 미 하원의 민주ㆍ공화 양당 지도자들은 초당적인 경기부양책 마련에 합의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민주)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공통된 입장을 찾고 의회의 제안이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미국 경제는 지금 당장 무엇인가를 해야 할 시급성을 안고 있다”고 강조했다. 의회 지도자들은 이날 중동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부시 대통령과 17일부터 경기부양책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부시 대통령도 이미 경기부양의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토니 프래토 백악관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이 경기를 진작하는 종합 대책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논의 중인 부양책에는 ▦감세 및 세금 환급과 ▦실업자지원 ▦난방비 지원 추가 등이 포함돼 있다.
금융해이에 대해 상대적으로 엄격할 수 밖에 없는 FRB도 경기부양의 필요성에 대해 끄덕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벤 버냉키 FRB 의장이 경기부양을 위한 감세나 재정지출을 지지할 수 있다는 의사를 의원들에게 피력했으며, 이로 인해 경기부양책에 선뜻 동의하지 못했던 의원들을 움직이게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버냉키는 경기부양책이 재정적자를 유발하더라도 빠른 시일 내에 일시적으로 시행된다면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공화당측이 주장하는 영구감세론과 경기부양책을 연관시키는데 대해선 언급을 거부해, 사실상 반대의사를 밝혔다.
FRB는 이 달말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리인하에 나설 것이 확실시된다. 시장에선 “0.75%포인트까지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FRB가 어느 정도 금리인하를 단행할지 주목된다.
행정부와 의회가 조기경기부양에 나서기로 합의한 만큼, 미 경기부양책이 한 달 안에 시행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 “금융권 손실 눈덩이… 이미 늦었다” 지적도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앞서 13일 경기부양 종합대책으로 상반기 안에 경제의 방향을 바꿔놓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경제 전문가들의 지적을 보도한 바 있는데, 실제로 경기부양책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지는 불확실하다.
16일 일본 요미우리신문도 “메릴린치를 비롯한 대형은행과 증권사들의 손실액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어나고 있어 전세계적 손실액이 3,000억 달러에 육박할 것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예측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언론들은 메릴린치와 씨티그룹이 한국투자공사(KIC), 일본, 싱가포르,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 등에서 191억 달러의 긴급 자금을 수혈 받은 것을 두고 “미국 금융권의 침몰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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