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웅 특별검사팀이 성영목 호텔신라 사장, 배호원 삼성증권 사장 등 차명계좌 관련자들에게 소환 통보를 시작하는 등 삼성 비자금 의혹의 핵심 단서인 차명계좌 수사에 돌입하면서 차명계좌가 ‘비자금 관리용’으로 확인될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차명계좌에 대한 삼성 측의 예상 해명 논리도 만만치 않아, 차명계좌를 둘러싼 특검팀 수사는 삼성측과의 치열한 머리 싸움이 될 전망이다.
일단 특검팀의 삼성 차명계좌 수사는 어느 정도 성과가 예상된다. 검찰 수사에서 삼성 전ㆍ현직 임직원 150명의 삼성증권 차명의심 계좌 400~500개 정도가 발견됐다. 비슷한 시기에 개설되고 비밀번호까지 동일한 것이 여러 개 있어 ‘차명계좌’라는 사실은 확실해 보인다.
또 이곳에는 수억~수백억원의 뭉칫돈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이것이 비자금이라는 의심도 타당성이 있다. 한 기업인은 “기업들이 직원들 차명계좌를 이용해 비자금을 관리하는 것은 고전적 수법”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이 흐름만 잘 추적한다면, 대략적인 비자금 규모가 밝혀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삼성 측의 방어태세도 탄탄해 보인다. 벌써부터 수사 대상에 오른 차명계좌와 자금의 불법성을 부인할 여러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우선 이것이 “이건희 회장의 개인 돈”이라는 주장이다. 고(故) 이병철 회장에게서 상속 받은 돈을 차명계좌로 관리해 왔고, 과거 20여년간 자산이 불어 규모가 커졌을 뿐 불법 혐의는 전혀 없다는 논리다.
두번째는 “과거 법적으로 인정되던 기밀비가 쌓여 있던 것”이라는 해명이다. 1999년까지만 해도 세법상 각 법인은 접대비 항목 중 10%를 영수증 없이 쓸 수 있는 ‘기밀비’로 인정받았다. 때문에 삼성은 당시까지 매출액의 0.2% 정도를 기밀비로 책정해 매년 적립해 왔고, 그 돈이 차명계좌에 있다는 것이다. 1999년 삼성의 전체 매출은 약 100조원이었기 때문에 그 해에 적립됐을 기밀비만 해도 2,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회사가 각 고위 임원들의 자산을 관리해 준 것일 뿐 비자금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특검 수사 과정에서 이런 종류의 삼성 측 주장이 거짓으로 결론 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특검의 고민은 남는다. 이는 “비자금은 그 존재 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점때문이다. 비자금은 그 자체가 아닌, 조성 방식이 불법적 분식회계를 통했거나, 사용처가 정ㆍ관계 로비 등 불법일 경우에만 사법처리 된다.
결국 특검팀은 수사를 통해, 차명계좌에 담겨져 있던 돈들이 어디에서 흘러왔고, 최종적으로 어디에 사용됐는지를 밝혀야 수사를 완료할 수 있다. 삼성 비자금의 존재는 2003년에도 정치권에 400억원대의 대선 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확인됐지만, 출처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특검팀이 사상 최초로 삼성의 비자금 출처를 밝혀낼 지 주목된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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