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복 국정원장이 자신과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의 대화록이 언론에 보도된 사건에 책임을 지고 전격 사임했다. 정권 말기의 이례적 사임만으로도 눈길을 끌지만, 대화록 유출에서 사임에 이르는 전말이 참으로 어이가 없다.
그는 사임회견에서 "대화록 유출 사건에 책임을 진다"고 밝혔다. 국가기밀을 다루는 기관의 장으로서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듯한 말투였다. 그러나 대통령직 인수위의 발표에 따르면 보고서 유출은 다름아닌 김 원장 스스로 저지른 '적극적' 행위였다.
지난해 대선 전날인 12월 18일 방북한 사실이 뒤늦게 보도돼 의혹이 일고, 인수위가 관련 보고를 요청하자, 8일 대화록을 인수위에 보고한 데 이어 그 이튿날 친분이 있는 언론사 간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비보도를 전제로 대화록을 제공하겠다고 밝히고, 국정원 간부를 시켜 전달했다.
너무나 민망해 직접 유출했다고 밝히지 못했겠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분명한 거짓말이어서 물러나는 모습조차 산뜻하지 못하다. 국정원 감사팀이 유출 경로를 조사한다고 조직 내부를 샅샅이 훑고 있는 동안 입 꾹 다물고 관망한 행태도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보안의식이 허술하고, 공과 사를 구분할 줄 모르고, 아직도 뭐가 잘못인지 모를 만큼 책임감이 희박한 사람이 어떻게 국가정보기관의 장으로 발탁됐고, 남북정상회담 등 중대한 업무를 맡았는지, 기가 막힌다.
아프간 인질 사태 당시 자신과 현장요원의 모습을 세계 언론에 스스럼없이 드러내 빈축을 샀던 게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 사람을 노무현 대통령은 한껏 격려ㆍ두둔했다.
사실 2006년 11월 최초의 내부승진 인사로 국정원장이 되었을 때부터 한때 척결대상 후보로 거론된 인물이라는 점 등에서 우려와 비판이 무성했다.
그런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만큼 사임으로 모든 게 끝날 수 없다. 보고서 유출 행위에 대해 최대한 사법적 조치를 강구해야 하는 것은 물론, 진정한 유출 동기 및 그 동안의 직무에서 다른 허점이 없었는지도 철저히 밝혀야 한다.
그것이 땅에 떨어진 국가정보기관의 신뢰를 회복하는 첩경이다. 그의 이번 행위는 국정원 개혁을 촉진하는 결과를 빚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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